“K팝 즐겨 듣고 드라마 ‘응팔’도 다 봤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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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재 풀린 이란을 가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21일 밤(현지 시간)에 찾아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한국 식당에선 이란의 한류 팬들이 모여 케이팝(K-pop) 그룹 ‘빅뱅’ 멤버의 생일 파티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놓고, 스마트폰으로 재생되는 ‘빅뱅’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함께 찍은 사진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중학교 3학년생인 데니즈 양(15)은 “빅뱅, 엑소 같은 케이팝 가수가 너무 좋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신정일치(神政一致) 국가 이란에서 만난 현지 젊은이들은 의외로 한국 문화에 익숙한 듯했다. 중국 동남아 등으로 퍼져나간 한류가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 이란 땅에도 상륙한 것이다. 서방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해제로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이 늘어날 것을 염두에 두고 테헤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도 200명이 넘었다.

이란에서 경영학석사 과정을 졸업한 베즈버이 샤거에크 씨(25)는 지난해 세종학당에서 개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는 “아버지가 다니던 자동차회사가 한국의 자동차부품 회사와 협력해서 어릴 적부터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두 달간 인턴 생활을 한 뒤 요즘은 이란에서 네이버 SNS ‘라인’의 현지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

이란에서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특히 한국 드라마의 힘이 컸다. 송일국 주연의 ‘주몽’과 이영애가 나온 ‘대장금’은 시청률이 85∼90%가 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해신’ ‘바람의 나라’ ‘상도’ ‘이산’ ‘해를 품은 달’ 등의 한국 사극들이 이란 TV를 통해 소개됐고, 현재는 공효진 이선균 주연의 ‘파스타’가 방영 중이다. 한국의 사극 드라마는 신체 노출이 적은 데다 페르시아 왕조 역사를 갖고 있는 이란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이란의 국영 IRIB TV에서 방영될 수 있었다. 샤거에크 씨는 “유럽의 드라마를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한국 사극을 보면서 두 나라가 비슷한 정서적 공감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란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방영 중인 최신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본다. 고교 1학년 예가나 양(15)은 “슈퍼주니어의 멤버인 시원이 출연했던 ‘그녀는 예뻤다’와 ‘응답하라 1988’을 재밌게 봤다”며 “웹사이트에 실시간으로 누군가가 페르시아어 자막까지 친절하게 붙여서 올려준다”고 말했다.

이란 국립 테헤란대에는 중국어와 일본어 학과는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어 학과가 없다. 그러나 교양과목으로 개설된 한국어 강좌에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몰려든다. 한류 팬부터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까지 매 학기 수백 명이 수강신청을 하고 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오성호 문화홍보관은 “테헤란대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면 이란과의 교역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가 이끈 한류 문화 외에 ‘가전(家電) 한류’도 거센 편이다. 어느새 한국 가전제품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어 독보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앞선 기술력과 높은 품질에 더해 현지 주민들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한 점이 맞아떨어졌다.

동부대우전자는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중동인의 특성에 착안해 1998년 자물쇠 냉장고를 선보여 150만 대 넘게 팔았다. 2014년에는 얇고 부드러운 히잡(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이 망가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세탁해 주는 ‘이슬라믹 린스’ 기능을 추가한 히잡 세탁기를 내놨다. LG전자는 지난해 이란인들이 전통 요리인 ‘채소 스튜’ ‘닭고기 찜’ 등을 자동 메뉴로 조리할 수 있는 ‘페르시아 솔라돔’ 오븐레인지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또 2013년에 나온 에어컨 ‘타이탄 빅2’는 섭씨 60도 이상의 혹서에도 견딜 수 있는 ‘열대 컴프레서(공기압축기)’를 장착해 호평을 받았다.

김승호 주이란 한국대사는 “이란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이란의 문화적 배경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페르시아 문명의 자존심이 강한 이란인들은 오랜 전통과 현대적 테크놀로지가 합쳐진 한국 문화와의 교류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란#한류#k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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