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철들면서 알게 되는… 절망에서 희망 찾는 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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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은 정말 자기 몰입적인 방식으로 흥미진진했다.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노라 에프런·반비·2012년) 》

뉴욕타임스 편집장을 지낸 할리우드 영화감독 고(故) 노라 에프런이 이 책에서 말하는 ‘커리어 결정 동기’는 엉뚱하다. 고등학교 때 “언론계에 여성 인력이 매우 적다”는 강연을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선 갑자기 기자가 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에프런은 대학 졸업을 한 달 앞둔 1962년 기자를 꿈꾸며 뉴스위크 면접을 봤지만 우편 담당 아가씨로 고용됐다. 부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 원고 배달을 했지만, 당시를 “일은 정말 자기 몰입적인 방식으로 흥미진진했다”고 회상한다.

그녀는 우편 담당에서 ‘자료 정리 담당’ ‘조사 담당’을 거친 뒤에야 마침내 뉴욕포스트로 옮겨 기자가 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뉴욕포스트 사무실 풍경은 가관이었다. 책상은 낡고 의자들은 부서져 있었으며, 모두가 담배를 피웠지만 재떨이는 없었다. 경력 20년 미만의 기자들은 책상은커녕 서랍 하나 갖지 못했다. 창문은 단 한 번도 닦은 적이 없어 몹시 불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프런은 “그런 데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터의 암울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에디터는 완전히 호색한이었고, 경영 담당 에디터는 사이코였다. 때로는 직원의 반 이상이 만취 상태인 것 같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그곳에서 보낸 첫 한 해 동안 나는 글 쓰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제들을 해내면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는 ‘어렵다’는 얘길 들으면 포기하지만 누군가는 도전의식을 불태운다. 누군가는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기회를 찾아내고 배우고 성장한다. 에프런의 책에서는 사이코와 악재가 산적한 곳에서도 낭만과 희망을 간직하며 커 나가는 인간의 여정을 엿볼 수 있다.

최근 ‘헬조선’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의 출신과 환경이 모두 만족스럽기만 했을까? 에프런의 회고는 ‘남 탓’ ‘환경 탓’ 하며 주저앉기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절망#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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