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련의 붕괴…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이 올거라 믿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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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김하은 옮김/664쪽·1만5800원/이야기가있는집

“기억하세요?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얘기하려면 전화 수화기에서 한 2∼3m 떨어진 곳에서 얘기를 했어요. 밀고, 도청 등은 그 당시 사회 내 아래부터 위까지 어디든 도사리고 있었으니까요.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결국 밀고자였어요.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도 있었어요. 상냥하고 밝은 분이셨지요.”

숲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새들은 밀고하지 않으니까. 생산 목표치를 달성해도 상점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런 상태의 사회는 공포만이 다스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많이 총살하고 더 많이 수용소에 수감시켰어요.”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구소련을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기록했다. 구소련 붕괴 후 20년이 지난 뒤지만 이들의 육성에는 구소련의 광기에 대한 증언이 스며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사회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자본주의란 불평등, 가난, 뻔뻔한 부(富)와 동일어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갑자기 겪은 자유에 대한 혼란이 담겨 있고 물질에 휘둘리다가 지친 탓에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는 위대한 사상을 섬기셨어요. 마치 뇌를 개조당한 것처럼 바지는 없어도 소총은 가지고 산다는 걸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오늘 세 종류의 신문을 샀는데 각기 다른 사실을 쓰고 있더군. 뭐가 진실이라는 거야? 예전에는 아침에 프라우다(소련 공산당 기관지) 하나만 읽고 나오면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었는데.”

‘세컨드핸드 타임’은 중고의 시대, 즉 새로운 시대를 맞았음에도 과거에 붙들려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를 가리킨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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