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달려라 ‘맛있는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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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화 2년 ‘푸드트럭’ 어디쯤 달리고 있나]

김치볶음밥을 파는 푸드트럭 ‘미스꼬레아’의 백래혁 대표. 1t 트럭에 실린 그의 꿈은 미국과 유럽 시장을 향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치볶음밥을 파는 푸드트럭 ‘미스꼬레아’의 백래혁 대표. 1t 트럭에 실린 그의 꿈은 미국과 유럽 시장을 향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세 명이 겨우 탄 1t 트럭이 대학로를 몇 바퀴나 돌았다. 트럭에는 한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아내의 여동생이 타고 있었다. 트럭이 달리는 내내 모두 말이 없었다. 트럭은 이들의 집이 있는 사당을 출발해 강남, 홍익대 등 서울 곳곳을 돌았다. 그 사이 한 번도 정차하지 않았다. 차가 덜컹일 때마다 딱딱한 시트에 얹힌 엉덩이가 뻐근했다.

어느덧 오후 3시.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침묵을 깨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돌아볼까.” 아내가 답했다. “오늘 장사 시작할 수 있을까?” 아내의 여동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지난해 2월 처음 시동을 건 푸드트럭 ‘미스꼬레아 가마솥 김치볶음밥’. 부부는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트럭에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팔겠노라 마음먹었다. 호기(豪氣)는 1t 트럭과 함께 거리로 내던져진 순간 사라졌다.

서울을 뱅글뱅글 돌았지만 차를 세우고 영업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 행선지로 택한 곳은 대학로. 일요일의 대학로는 데이트를 나온 연인과 젊은이들로 붐볐다. 이곳에서도 30분을 돌다 세 사람은 마침내 차를 멈췄다. 대학로에서 성균관대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 서로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파이팅”을 외친 뒤 이들은 처음 준비할 때의 꿈을 떠올렸다. 미국과 유럽의 거리를 누비며 푸드트럭에서 김치볶음밥을 선보이는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용기를 내 트럭에서 나왔다. 그리고 대학로를 오가는 인파에게 소리쳤다. “가마솥 김치볶음밥이 왔습니다!”

2014년 정부가 푸드트럭 합법화 방침을 밝힌 뒤 2년이 됐다. 식당 대신 푸드트럭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행사장 돌며 추로스 파는 ‘츄앤츄’ 하루 평균 40만원 매출▼

‘멕시쿡’의 대학생 사장님 김두하(왼쪽), 도다온 씨.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멕시칸 요리를 선보이는 게 이들의 꿈이다.
‘멕시쿡’의 대학생 사장님 김두하(왼쪽), 도다온 씨.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멕시칸 요리를 선보이는 게 이들의 꿈이다.
지난해 7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가. 월세 32만 원짜리 좁은 원룸에서 김두하(26) 김형민(25) 도다온 씨(24)가 나란히 선 채 가스레인지에 놓인 프라이팬을 바라보고 있다. 가스레인지 불꽃이 뿜는 열기에 방은 금세 뜨거워졌다. 선풍기도 없는 방에 사는 세 명은 민소매에 팬티만 입고 더위를 쫓고 있었다.

여름날 한 끼를 때우려는 자취생들의 분투기처럼 보이지만 세 명은 어엿한 예비창업자였다. 푸드트럭에서 판매할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휴학까지 한 뒤 수개월째 합숙 중이었다. 이날 프라이팬에 올려진 음식은 멕시코 요리인 부리토. 토르티야(밀가루나 옥수숫가루로 만든 얇은 피를 구운 것)에 닭고기와 치즈, 양배추를 넣어 만든 음식이다.

메뉴는 정했지만 관건은 ‘맛’이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부리토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5월 합숙을 시작한 뒤 3개월째. 이들의 식사는 늘 ‘실패한’ 부리토였다.

훈제소스로 맛을 낸 ‘멕시쿡’의 대표 메뉴 부리토.
훈제소스로 맛을 낸 ‘멕시쿡’의 대표 메뉴 부리토.
시간이 흐르고 세 사람의 고민도 깊어졌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소스가 필요했다. 우연히 방문한 서울 이태원의 한 외국인 상점 진열대에서 이들은 처음 보는 훈제소스를 찾았다. 반신반의하며 구입한 소스를 부리토에 넣은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네!”

그렇게 지난해 9월 퓨전 멕시코 요리 푸드트럭 ‘멕시쿡’이 문을 열었다. 대학생이 첫 직장으로 푸드트럭을 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서울시 청년창업센터에서도 대학생이 운영하는 푸드트럭의 희소성을 인정해 창업자금과 사무실을 지원했다.

김두하 씨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전자회사에 다니는 친척을 옆에서 지켜봤는데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며 “아무리 좋은 회사에 다녀도 행복하기 어렵다면 내가 직접 회사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리틀쿠반’의 그릴치즈 샌드위치.
‘리틀쿠반’의 그릴치즈 샌드위치.
푸드트럭은 말 그대로 음식을 파는 트럭이다. 과거엔 차량을 개조해 음식을 파는 게 불법이었다. 하지만 2014년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푸드트럭 활성화 방침이 나온 뒤 마침내 양성화의 길을 밟게 됐다. 식품위생법이 개정돼 자동차를 이용한 식품접객업이 허용됐고 합법적인 영업장소도 생겼다.

푸드트럭 창업자도 늘고 있다. 현재 전국에 총 93대의 푸드트럭이 운영 중이다. 상대적으로 창업비용이 적어 위험 부담이 작고 고정 점포를 구하는 데 필요한 비싼 권리금도 없어 저비용 창업 희망자 사이에서 관심이 높다. 푸드트럭 창업비용은 차량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000만∼3000만 원 수준이다.

대학에서 외식산업을 전공한 ‘야끼’의 김기만 대표는 한식 일식 양식 주방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푸드트럭 고급화를 이끌고 있다.
대학에서 외식산업을 전공한 ‘야끼’의 김기만 대표는 한식 일식 양식 주방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푸드트럭 고급화를 이끌고 있다.
처음 우려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종시 주최로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세종호수공원에서 열린 ‘제1회 세종푸드트럭페스티벌’엔 나흘간 총 6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20여 대의 푸드트럭이 참여한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푸드트럭 행사였다.

‘야끼’의 오코노미야키.
‘야끼’의 오코노미야키.
대학생 사장님이 튀긴 치킨, 커플 창업자가 구운 와플 등 다양한 푸드트럭이 솜씨를 뽐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한 한 푸드트럭 관계자는 “손님이 많아 한 달 매출을 하루 만에 올릴 수 있었다. 앞으로도 푸드트럭을 위한 행사가 많이 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종푸드트럭페스티벌은 10월 두 번째 행사를 준비 중이다.

옛날부터 흔하게 볼 수 있던 ‘떡볶이 트럭’과 푸드트럭의 가장 큰 차이는 외관이다. 검은색과 노란색 분홍색 등 색상이 다채롭고 메뉴에 따라 인테리어도 각양각색이다. 일식을 파는 푸드트럭은 대나무와 홍등으로 멋을 내고 한식을 취급하는 푸드트럭 위엔 떡하니 가마솥이 놓여 있다. 푸드트럭의 다양한 모양처럼 푸드트럭에 담긴 ‘사장님’들의 꿈과 사연도 다채롭다. 내 일을 한다는 설렘 뒤에는 남모를 설움도 있었다.

잘나가는 회사 그만두고 1t 트럭 앞으로

여의도 금융인들의 지친 피로를 풀어주는 해독주스 전문 푸드트럭 ‘더주스박스’의 김기열 대표. 이동식 도서관 차량을 개조한 푸드트럭이 눈길을 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의도 금융인들의 지친 피로를 풀어주는 해독주스 전문 푸드트럭 ‘더주스박스’의 김기열 대표. 이동식 도서관 차량을 개조한 푸드트럭이 눈길을 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본보는 푸드트럭 22대를 선정해 그들의 창업기를 조사했다. 푸드트럭 사장들이 창업에 나선 나이는 평균 39세. 회사 생활이 주는 지루함과 안락함 사이에서 갈등하다 용기를 내서 창업에 나선 직장인이 많았다. 바리스타와 요리사 외에도 문화센터 강사, 대기업 직원, 군무원 등 다양한 이들이 푸드트럭의 문을 두드렸다.

‘미스꼬레아’의 창업자인 백래혁(40) 임진영 씨(41·여) 부부는 창업 전까지 나름대로 탄탄한 회사에서 일했다. 임 씨는 외국계 영화사에서 영화 라이선싱 업무를 해 왔다. 사회생활 15년 차. 직급은 부장이었다. 백 씨는 외국계 금융사에서 법인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수석 컨설턴트였다. 두 사람이 받던 연봉은 남들이 들으면 입을 벌리고 부러워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꿈이 담긴 그릇을 돈으로 채울 수는 없는 법. 영화사를 다닐 때 임 씨는 백 씨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 중국 가서 떡볶이 팔래. 아니면 프라이드치킨.” 아내가 불쑥 사업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남편은 조마조마했다. 진짜 나를 두고 비행기를 타러 가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사업하려면 한국에서 해.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 달래듯 건넨 말이었다. 그러자 임 씨는 2014년 11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 선배이자 연상인 아내의 추진력을 간과한 결과다.

“사실 아내가 푸드트럭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금 하다가 금방 포기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눈물 한 번 쏙 빼고 정신 차려라’ 하는 마음도 들었죠.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관두고 트럭에서 음식을 판다는 게 사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잖아요.”

창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갔다. 백 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푸드트럭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었다. 꼼짝없이 사업 동반자가 됐다. 약 1년간 주말을 할애해 투잡 생활을 하던 백 씨도 다음 달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사장이 된다.

‘미스꼬레아’의 메뉴는 김치볶음밥이다. 창업 아이템을 찾다가 노량진에서 먹은 컵밥에서 영감을 얻었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등 예측할 수 없는 이유로 영업에 지장을 받을 만한 재료는 피하면서 세계 시장에 통할 메뉴를 찾으려 한 것이다. 영업 첫날 대학로에서 고작 10그릇의 김치볶음밥을 팔았지만 이들은 희망을 봤다.

“‘김치볶음밥 드세요’라는 말이 입에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손님들에게 우리가 파는 김치볶음밥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더라고요.”

한때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이준영 대표는 사업 감각을 살린 ‘츄앤츄’로 푸드트럭의 프랜차이즈화를 선도할 계획이다.
한때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이준영 대표는 사업 감각을 살린 ‘츄앤츄’로 푸드트럭의 프랜차이즈화를 선도할 계획이다.
개인사업을 하다 좌절을 맛본 뒤 푸드트럭으로 재기를 노리는 이도 있다. 추로스(막대과자)를 파는 ‘츄앤츄’의 이준영 대표(50)는 지난해 7월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이 씨는 2000년대 중반까지 작은 정보통신 회사를 운영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사기 사건에 휘말리며 회사는 문을 닫았고 그는 분양대행사에서 새 직장을 구해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푸드트럭이 합법화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씨의 동물적인 ‘촉’이 꿈틀거렸다. 시간이 지나면 푸드트럭 시장에도 프랜차이즈 영업이 접목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가장 깨끗하고 맛있는 추로스’를 목표로 창업에 나섰다. 비록 트럭에서 만드는 음식이지만 매일 기름을 갈고 정직한 재료를 사용하면 손님들이 알아줄 것이라 믿었다. 고객의 믿음이 쌓이면 가맹 푸드트럭을 내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경기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장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츄앤츄’는 하루 평균 4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시장에 안착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 세종=이기진 기자
#푸드트럭#합법화#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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