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법 통과 숨은주역 3인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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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法 통과 이후]
“중단-중지, 치료-의료 단어 뉘앙스 달라 국어학자에게 자문해 수차례 조정”

“순간순간이 정말 가시밭길이었어요.”

웰다잉법 통과의 숨은 주역으로 알려진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과 윤영호 교수(이상 서울대 의대 교수), 정통령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지나온 논의 과정을 회상하며 11일 이렇게 입을 모았다.

이 원장은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특별위원장을 맡아 수십 차례 회의와 공청회를 열며 웰다잉법의 원형이 된 권고안을 ‘한 땀 한 땀’ 구성해 나갔다. 이 원장은 “모든 내용이 각각 첨예한 쟁점을 담고 있어 단어 한 글자를 정하는 데에만 여러 날이 걸릴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특히 연명의료 ‘중단(中斷)’과 ‘중지(中止)’ 중 어떤 단어가 적합한지를 놓고도 수차례 회의를 열고 국어학자에게 자문까지 해야 했다. 결국 법조문에는 ‘재개하지 않는다’는 뜻에 더 가까운 ‘중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치료’로 번역돼왔던 영어 단어 ‘Treatment’를 ‘의료’로 번역하는 데에도 진통이 따랐다. ‘치료’는 회복의 목적을 담고 있기 때문에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이번 웰다잉법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윤 교수는 웰다잉법이 좌초될 위기마다 새누리당 정갑윤 국회부의장, 김세연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우윤근 의원 등 여야 의원 30명이 참여한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과 긴밀히 관계를 맺으며 정치권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웰다잉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등의 심의에서 지체될 때마다 막후 조율을 도맡았다. 윤 교수는 “여야가 웰다잉 문제 앞에서는 한목소리를 내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했던 막판 변수에 대응하는 것은 정 과장의 몫이었다. 원안에는 무연고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병원 윤리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가 당사자 동의 없이는 무연고자의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쓸 수 없도록 ‘시체해부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게 예기치 못한 걸림돌로 등장했다. 결국 실무진은 연명의료와 관련된 무연고자 조항을 최종 법안에서 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모두 웰다잉법 통과를 환영하면서도 중단 가능 연명의료 대상이 막판에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로 제한된 데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의료 기술의 발달에 따라 앞으로 새로 등장할 시술은 웰다잉법이 포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정 과장은 “웰다잉법이 19대 국회에서도 좌절되면 수많은 환자들이 기약 없는 고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판단하에 타협을 이끌어내려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유근형 기자
#웰다잉법#연명의료#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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