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 두드리다 소심 베팅… 또 대어 놓친 KB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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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증권 인수 ‘윤종규의 꿈’ 무산

KDB대우증권을 인수해 KB금융을 한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로 만들겠다던 윤종규 회장의 꿈이 끝내 무산됐다. KB금융은 2조1000억 원 안팎의 가격을 제시해 2조4500억 원에 달하는 통 큰 가격을 적어낸 미래에셋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전문가들은 뚜렷한 오너(주인)가 없고 최고경영자(CEO)가 단기성과에 집착해야 하는 KB금융 특유의 한계를 보여준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 M&A 잔혹사 되풀이

KB금융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실패를 맛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본계약까지 체결했다가 론스타에 대한 ‘먹튀 논란’과 검찰 조사 등이 이어지자 인수를 포기한 것이 ‘M&A 잔혹사’의 시작이었다. 그 후 2012년 ING생명 한국법인을 인수하려다 이사회의 반대로 포기했고, 2013년 말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는 농협금융에 밀렸다. 지난해 윤 회장이 취임한 뒤 천신만고 끝에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인수에 성공하면서 ‘M&A 불운’에서 벗어나는 듯했지만 올 크리스마스에 다시 쓴맛을 보게 됐다.

사실 본입찰 전까지만 해도 KB금융은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 자기자본 28조 원(6월 말 기준)에 달하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데다 대우증권을 인수해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거대 금융그룹으로 거듭나겠다는 명분도 탄탄했다. 대우증권 노조도 KB금융을 지지하고 나섰고 금융당국의 시선 역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KB금융의 명백한 패배였다. 자본시장 기여도 등 다른 평가요소들이 있긴 했지만 3000억 원 이상 벌어진 가격 차를 뒤집을 순 없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오너십 없는 지배구조가 KB금융이 M&A 경쟁에서 연달아 밀리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기업의 미래와 향후 시너지 효과를 감안하면 경우에 따라 과감한 ‘베팅’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주인 없는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그런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은행 특유의 보수적인 속성도 ‘소심한 가격’을 부른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본입찰 후 미래에셋의 응찰가격이 2조40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지자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공인회계사(CPA) 출신인 윤 회장의 숫자에 강한 면모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조직-인사상 잡음도 걸림돌

내부 조직 문제와 인사상의 혼란도 잇단 M&A 실패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은 대우증권 입찰을 앞두고 10월 SGI서울보증 김옥찬 사장을 KB금융지주 사장으로 내정하면서 인수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SGI서울보증의 후임 인사가 늦어지면서 상황이 꼬였다. 결국 행장을 겸하고 있는 윤 회장이 대우증권 인수까지 손수 챙겨야 했다. 윤 회장 취임 이전에는 정치권 등의 ‘낙하산’ 인사들이 요직을 꿰차면서 경영진과 이사회 간 갈등이 불거지고 출신, 지연 등에서 비롯된 여러 ‘라인’이 득세했다. 일사불란한 의사결정과정이 필요할 때 오히려 조직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한편 KB금융은 이날 “실사 결과에 기반해 합리적인 입찰 가격을 제시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비은행 부문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KB금융은 일단 급한 대로 KB투자증권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KB국민은행과의 은행·증권 복합점포를 확대할 방침이다. 증권사에 대한 M&A 가능성도 계속 열어둘 계획이다.

문제는 대우증권만 한 매물을 또다시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증권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대그룹 구조조정의 변수가 커 매각 일정조차 불투명하다.

장윤정 yunjung@donga.com·김준일 기자
#kb#대우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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