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깨어난 포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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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민주당 후보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다.

19일 미 뉴햄프셔 주 세인트앤셀름대에서 ABC방송 주최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3차 TV 토론은 ‘차기 대통령감 클린턴’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뉴햄프셔는 내년 2월 아이오와에 이어 두 번째 예비경선이 열리는 곳으로 ‘여론 풍향계’ 역할을 하는 곳이다.

클린턴은 이날 토론에서 한때 ‘클린턴 대세론’을 위협했던 2위 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압도했다. 샌더스가 더 이상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확신한 클린턴은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고도 그냥 넘기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샌더스는 자신의 선거캠프 직원들이 16일 민주당 유권자 정보 서버 방화벽에 일시적인 문제가 생긴 틈을 타 클린턴 진영에서 지지자 자료를 몰래 빼낸 사건과 관련해 공개 사과하는 것으로 토론을 시작했다. 그는 “유권자 명단을 빼내는 행위는 우리가 추구하는 선거운동 방식이 아니다. 이 사안과 추가로 관련된 사람을 내가 알게 되면 모두 해고할 것”이라며 피해를 입은 클린턴과 이 일로 실망했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사과했다. 샌더스는 이어 진상 파악을 위해 양측의 선거운동본부가 독립적인 조사를 함께 수행하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클린턴은 순순히 사과를 받아들였다. 약점을 잡힌 샌더스를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본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큰 공화당 대선후보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와 공화당 비판에 집중했다. 클린턴은 트럼프에 대해 “허세를 동원해 사람들로 하여금 복잡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그는 최고의 이슬람국가(IS) 모집책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샌더스도 “트럼프 같은 사람이 모든 멕시코인을 성폭행 범죄자라고, 모든 무슬림을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는 동안 부자는 더 부유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NN은 이러한 클린턴의 토론 전략에 대해 “샌더스를 비판함으로써 민주당 당내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진짜 목표(real targets)는 샌더스가 아닌 트럼프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금 당장이라도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며 클린턴을 이날 토론의 승자로 꼽았다. ABC방송은 토론 후 “클린턴은 큰 그림을 그렸고, 샌더스는 종종 감상적으로 사안에 접근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은 IS 격퇴 문제 등 주요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자신의 국무장관 이력을 십분 발휘하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잇따른 테러를 계기로 미국에서 총기를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클린턴은 “더 많은 사람들을 총기로 무장시키는 대신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힌 뒤 “트럼프 등 공화당원들이 말하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문명 충돌 식의 개념을 특히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샌더스는 “사우디아라비아같이 부유한 나라는 예멘 대신 IS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며 중동 국가들이 지상군을 보내 IS를 격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클린턴은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해 비행금지구역 설정,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퇴진 등 버락 오바마 정부의 시각을 대부분 반영했다. 반면 샌더스는 알아사드 문제에 대해 “향후 수년간 계속 다뤄져야 할 2차적 사안이다. 지금은 IS 척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클린턴은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최근 개봉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인용해 “포스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May the force be with you)”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여 박수를 받기도 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민주당#대선#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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