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 前간부 “김일성父子 초상화 떼라” 공개항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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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서 뿌려 제명당한 고충의씨
“北 거짓말공화국인것 다 알지만 밥벌이-친척 걱정에 총련 침묵”
“대북종속 끊고 동포재산 되찾아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전직 간부가 집행부에 대북 종속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총련 내부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같은 내부비판은 초유의 일이다.

고교 때 총련 활동을 시작해 히로시마(廣島) 선전간부 등을 지낸 고충의 씨(70·사진)는 지난달 18일 도쿄 신주쿠(新宿)의 한 호텔에서 열린 총련 산하 상공회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모든 기관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떼라’고 요구하는 건의서를 배포했다. 그는 건의서에서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피해자 전원을 귀환시킬 것과 북한 핵무기 개발에 반대할 것 등도 요구했다. 고 씨는 앞에서 둘째 줄까지 건의서를 배포하다 제지당했고 이후 총련에서 제명됐다.

24일 도쿄(東京) 외곽의 한 찻집에서 기자와 만난 고 씨는 건의서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청춘과 전 재산을 바치며 총련 활동을 했으나 (북한 체제에) 의문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너무도 고통받았다. 이 나이가 돼 그런 나의 청춘을 청산하고 싶었다”고 했다. 고 씨는 “북한은 거짓말 공화국”이라며 “총련 활동가와 총련 소속 동포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밥벌이와 북한에 가 있는 친척들의 안위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총련 관계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고 씨는 총련 관계자가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자 분노한 목소리로 “왜 (당신이) 화를 내나.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어떤 부분이 납득이 안 가나”라고 반박했다.

고 씨가 허종만 총련 의장 앞으로 쓴 건의서에는 북한의 지도자 숭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다. 분량도 A4 용지 4장에 이른다. 그는 “김일성 저작 전집을 5권 모두 읽어봤는데 자기모순에 가득 차 있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이 자신을 적대하는 세력을 비판할 때 ‘우연분자’라는 말을 하는데 능력도 자질도 없는 자가 현재 지위에 우연히 오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어이, 당신(김일성을 지칭)이야말로 최대의 우연분자가 아니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련에 대북 종속관계 단절을 요구하면서 △총련 결성 시 8대 강령에 있었던 핵병기 금지 항목을 부활하고 △재일조선인 신용조합을 통해 사라진 재일동포의 막대한 재산의 향방과 그 책임을 명확히 하고 △총련 간부는 조선노동당 당적을 이탈하거나 당원이 아닌 사람으로 채울 것을 촉구했다. 또 북한과 총련 집행부를 향해 “더 이상 죄를 쌓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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