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발전, 값비싼 대가” 英 석탄발전 올스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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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리는 석탄발전시대]<상>선진국들 발빠른 대응

영국 웨스트요크셔 주 웨이크필드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 ‘SSE 페리브리지’ 전경. 한때는 영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꼽혔지만 정부의 강력한 탈석탄 정책으로 인해 내년 3월 폐쇄될 예정이다.

웨이크필드=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영국 웨스트요크셔 주 웨이크필드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 ‘SSE 페리브리지’ 전경. 한때는 영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꼽혔지만 정부의 강력한 탈석탄 정책으로 인해 내년 3월 폐쇄될 예정이다. 웨이크필드=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 지구의 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2도 높은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이달 30일부터 2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세계 각국에선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불리는 석탄발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본보는 영국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탈(脫)석탄발전’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

17일(현지 시간) ‘축구의 도시’ 영국 맨체스터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웨이크필드. 높이가 198m에 이르는 굴뚝 2개와 115m의 냉각탑 8개를 갖춘 유럽 최대 석탄화력발전소 ‘SSE 페리브리지’가 잿빛의 거대한 외관을 드러내고 있었다. 1966년 가동된 이 발전소는 규모만큼이나 발전용량도 크다. 현재 가동 중인 설비의 용량은 총 1068MW(메가와트)로 약 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발전소 내부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적막했다. 설비가 가동되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내년 3월 폐쇄하기로 올해 5월 결정되면서 가동을 대부분 중단했기 때문이다.

한때 영국 산업 발전의 상징 중 하나였던 이 거대한 발전소는 이제 영국 정부의 강력한 ‘탈석탄 정책’의 상징이 됐다. SSE 관계자는 “정부가 국가 전력을 석탄발전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강한 정책적 의지를 보이면서 임직원의 재취업 준비 등을 위해 빠른 폐쇄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英 정부 “석탄발전의 미래는 없다”

18일 영국 정부는 “2025년까지 국내의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수년간 석탄발전소 폐쇄 방침을 검토하다가 이날 확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SSE 페리브리지 발전소 폐쇄를 시작으로 향후 10년 내 전국 12곳의 석탄발전소가 모두 가동을 멈추고 문을 닫게 된다. 그 대신 석탄발전소가 완전 폐쇄되기 전까지 신규 천연가스와 원자력, 해상풍력발전소를 추가 건립해 대체 전력원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영국은 석탄발전소 폐쇄 결정 이전에도 2013년 탄소세의 하한을 설정하고 매년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의 ‘탄소가격 하한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시행해왔다. 이 같은 탈석탄 정책은 2014년 영국 정부가 주도해 유럽연합(EU)이 이끌어낸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합의를 지켜 나가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꼽힌다. EU 소속 28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제안을 수용해 EU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40% 줄이겠다는 ‘역사적 합의’를 이뤄낸 바 있다.

퍼거스 그린 런던정경대(LSE) 연구원은 “영국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부문이 석탄발전이고, 두 번째가 자동차 등의 교통수단”이라며 “석탄발전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EU 목표치에 근접하는 상당한 감축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1952년 ‘런던 스모그 사건’을 겪은 영국의 ‘트라우마’도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런던 스모그 사건 당시 석탄 연소에 따른 연기가 형성한 스모그가 일주일 동안 지속되면서 총 1만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앰버 러드 영국 에너지기후변화부 장관은 “영국 같은 선진국이 오염이 심하고 탄소 배출이 많은 석탄발전소에 의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석탄발전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 대기오염의 사회적 비용 ‘공감대’

뜻밖인 점은 기존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던 기업이나 소비자들의 반발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석탄발전소가 폐쇄되고 대체 발전소가 들어서기 위해선 일정 부분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정부 방침에 찬성하고 있다. 그린 연구원은 이에 대해 “단지 싼 전력의 원가로 인해 얻는 이익보다 환경오염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추가 비용이 더 크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영국 에너지산업 분야의 80여 개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관련 산업 협회인 ‘에너지UK’는 성명을 통해 “영국의 에너지산업은 기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가정과 기업 전체에 안정적이고 청정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며 정부 방침을 지지하고 나섰다. 사실상 반대 없는 ‘탈석탄발전’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런던·웨이크필드=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영국#석탄#석탄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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