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麵)이 좋다]배곯다 겨우 먹던 라면, 이젠 전세계 기호식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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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중적인 면 ‘라면’
한국인 소비하는 면 종류 중 70% 차지하는 대중음식으로 정착
시설 현대화하며 수출효자로 부상… 최근 면발전쟁 통해 소비자 잡기 나서
매운맛 원형 농심 ‘신라면’, ‘맛짬뽕’으로 이어지는 R&D 선도

누군가 한 젓가락 가득 라면을 집어 올린 모습을 보면 자신이 먹지 않더라도 흐뭇한 포만감이 든다. 한국에 라면이 출시된 지 50년
 넘게 지나면서 한국인들의 유전자(DNA)에 ‘라면의 맛’이 각인된 건 아닐까. 사진은 농심이 새로 출시한 ‘맛짬뽕’ 모델인 배우
 박성웅 씨의 모습. 농심 제공
누군가 한 젓가락 가득 라면을 집어 올린 모습을 보면 자신이 먹지 않더라도 흐뭇한 포만감이 든다. 한국에 라면이 출시된 지 50년 넘게 지나면서 한국인들의 유전자(DNA)에 ‘라면의 맛’이 각인된 건 아닐까. 사진은 농심이 새로 출시한 ‘맛짬뽕’ 모델인 배우 박성웅 씨의 모습. 농심 제공

한반도에서 국수(면·麵)를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통상 밀의 전래시기가 4세기 무렵인 만큼 삼국시대에도 조상들이 국수를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반도에서의 밀 경작이 대중화되지 못한 만큼 메밀로 된 국수를 먹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고려 말 학자인 이색(1328∼1396)이 밀가루 국수와 관련된 시를 여러 편 남긴 만큼 고려 때 이미 면으로 만든 국수가 대중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수의 전래가 어찌 되었건 면류는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서 떼놓을 수 없는 식사다. 때로는 훌륭한 별미로, 때로는 빨리 먹는 식사대용으로 사랑받고 있다. 올 초 블룸버그와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는 한국인의 1인당 면류 소비량을 연간 9.7kg으로 집계했다. 이는 면 강국인 일본(9.4kg)을 제친 세계 1위 기록이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다양한 면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라면’의 역사와 최근 트렌드, 앞으로의 전망을 함께 살펴봤다.
‘공손히’ 먹는 고급 식단에서 모두의 영양식으로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깨어넣은 생계란이 또 예사 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하였다. (생략) 철은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이문열, 변경 7권(1998)

소설가 이문열이 1960년대 라면을 먹는 한국인을 묘사한 글이다. 국내에서 라면은 1963년 9월 처음 출시됐다. 삼양식품의 창립자인 고 전중윤 회장이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서민들이 한 그릇에 5원인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을 선 것을 보고 일본 묘조(明星) 식품에서 기술과 기계를 도입해 만들었다. 생소한 음식인 만큼 삼양식품 직원들이 공원 등지를 돌며 무료 시식행사도 열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라면은 국내 면의 대표 주자가 됐다. 정부가 보릿고개 극복을 위해 소위 ‘혼분식 장려 정책’을 펴면서 다양한 회사에서 여러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주식회사가 ‘롯데라면’을 출시한 것 외에 ‘풍년라면’(풍년식품), ‘닭표라면’(신한제분), ‘아리랑라면’(풍국제면) 등 지금으로선 이름도 생소한 제품들이 1960년대에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라면이 소비자들에게 대중적인 음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러던 것이 치열한 경쟁 끝에 1960년대 말에는 삼양식품과 농심만 남게 됐다. 농심은 후발 주자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최초의 짜장라면과 소고기 국물맛의 소고기라면 등 다양한 실험을 하게 된다.

매운맛으로 통일된 1980년대

라면 시장은 1980년대 급변기를 맞았다. 수프 맛에 연구개발(R&D)이 집중되면서 지금 한국 라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운맛 라면이 나온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1986년 출시된 농심 ‘신라면’이다. 농심 관계자는 “당시 매운맛을 내기 위해 전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품종의 고추를 사들여 실험했다”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고기 국물에 매운맛을 결합해 ‘시장을 뒤엎을’ 상품을 기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전에도 농심은 ‘너구리’(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등 히트작을 줄줄이 출시했다. 이 때문에 1985년 3월 농심이 처음으로 라면시장 1위로 올라섰다. 1986년 신라면 출시 이후인 1988년에는 농심의 라면시장 점유율이 절반이 넘는 50.6%까지 치솟았다.

여기엔 라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지(牛脂) 파동’도 있다. 1989년 검찰이 공업용 우지를 수입해 라면 튀김기름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로 삼양식품 등 5개 회사 대표와 임직원을 구속한 사건이다. 군 장병에게 라면 보급이 중단될 정도로 국민적 라면 거부감이 일어나며 라면업계 전반을 강타했다. 이 사건은 1997년 대법원이 검찰 상고를 기각하고 삼양식품의 무죄를 확정하면서 끝났다.

이후 라면업체들은 다양한 라면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함께 시설 현대화에도 나섰다. 또 해외 수출에도 나서며 한국 라면의 우수성을 빛냈다. 지난해 국내 면류 수출액은 3억2000만 달러(약 3648억 원)로 이 중 65.1%가 라면이다.




‘면발전쟁’ 나선 라면업계

올해 라면업계는 ‘면발전쟁’에 나섰다. 그동안 라면이 맛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면발을 차별화해 새로운 히트작을 내놓겠다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농심은 이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굵은 면발’ 시리즈를 연달아 내놓으며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굵은 면발 첫 제품은 올 초 출시한 ‘우육탕면’이다. 이 라면은 농심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발매했다.

두 번째 시리즈 출시 제품이 4월 내놓은 ‘짜왕’이다. 굵은 면발에 다시다를 넣어 식감을 높였다. 한 달 만에 100억 원의 매출을 나타내며 정체된 라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농심은 최근 ‘맛짬뽕’을 출시하며 ‘3mm 굴곡면’을 선보였다. 면발 세로로 굵은 홈이 파여 있어 잘라놓은 단면이 십(十)자 모양을 띠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길게 파인 홈으로 국물이 면발을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것”이라며 “동시에 씹는 맛도 더해줘 수제면과 같은 식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심의 시도 이후 다양한 제조사들이 면발 전쟁에 참전했다. 오뚜기는 프리미엄 짜장라면인 ‘진짜장’을 내놓는 한편 농심이 굵은 면발 짬뽕을 내놓기 전인 10월에 신제품 ‘진짬뽕’을 내놓고 홍보에 들어갔다. 삼양식품 역시 17일부터 신제품인 ‘갓짬뽕’을 내놓고 판매를 시작했다. 삼양식품 측은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도록 굵직한 면발과 정통 짬뽕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맛짬뽕

정체된 라면시장 이번엔 반전 이룰까

라면업계는 올해 굵은 면발 붐을 새로운 시장확대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연간 1인당 9kg까지 늘었던 국내 라면 소비량은 2012년 8.2kg과 2013년 8.9kg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2011년보다 소폭 늘어난 9.1kg으로 집계됐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시장이 축소되거나 정체된 것이다. 그만큼 신제품 출시 등의 움직임도 위축됐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로 떠오른 굵은 라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좋은 편이다. 농식품부가 최근 발표한 ‘2015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5.6%가 “굵은 면발 라면류를 구매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라면업체 관계자는 “라면의 변신은 제조사 입장에서 선택이 아니라 숙명에 가까운 사항”이라며 “소비자들이 면을 계속 소비하기 위해 어떤 제품을 내놓아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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