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사할린 징용자 유골 봉환사업 지속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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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석 연세대 법학과 박사과정
신희석 연세대 법학과 박사과정
1945년 당시 소련군이 진주한 남사할린에는 한인 징용자 3만여 명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1990년 한소 수교까지 두 번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됐다. 사할린 한인들의 부인과 자식들은 한국에서 ‘서방 잡아먹은 년’ ‘아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들으면서도 ‘소련 빨갱이 가족’ 딱지가 붙을까 봐 숨죽인 채 살아왔다.

이렇게 한 맺힌 국내 유족들의 요청으로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외교부와 함께 러시아와 교섭해 2013년부터 유골 봉환 및 한인기록물 입수사업을 해왔다. 사할린 동토에 남겨진 남편,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드리는, 유족들에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이 걸려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할린 한인은 나라를 잃어서,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끌려간 분들이다. 지금도 사할린 공문서관에서 징용자 개인정보와 매장 위치를 파악하고, 유골을 봉환하는 일은 한국 정부만 할 수 있다. 일본 경찰이 요시찰 인물로 지목했던 독립운동가가 빛을 보고, 7월에는 한인 846명이 강제동원된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뜻깊은 사업이 난관에 놓였다. 강제동원위는 2010년 출범한 뒤 2013년 법개정으로 올해 말까지 활동기간이 연장됐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서 재연장법안 심사가 순탄치 않다. 유해 발굴을 위한 기록물입수사업도 내년도 예산이 포함될지 불투명하다.

여야의 초당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승계하게 돼 있는 행정자치부는 자체적으로 또는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해 기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원재단은 민간단체로 개인정보 열람과 외국과의 교섭이 어렵다. 지원재단이 독일 정부와 재계가 강제노동 보상을 위해 100억 마르크를 출연한 기억·책임·미래 재단처럼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일본 기업이 지원재단에 출연해도 소송에서 자유롭게 할 조약이 없고 일본은행의 미불임금 공탁금도 북한 주민 몫이 섞여 있어 한국 북한 일본 3자 간 협의 없이는 처리하기가 어렵다.

행자부 공무원도 전문성이 없는 데다 한인기록물 입수사업 예산을 삭감하려는 것을 보면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원재단을 기억·책임·미래 재단처럼 키워 낙하산으로 가려는 행자부 고위 관료들의 방해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지원재단과 강제동원위원회를 경쟁관계로 보는 것부터가 인권이나 국가위신은 안중에도 없는 처신이다.

그동안 34만여 건의 역사자료를 수집한 강제동원위의 활동 계속을 당부하는 요망서를 한국 정부와 국회에 보내온 일본의 양심적 연구자와 단체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수년간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달라며 읍소해 온 신윤순 할머니는 지금도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읍소를 계속하고 있다. 제발 대한민국이 사할린 징용자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데 나서기를 바란다.

신희석 연세대 법학과 박사과정
#사할린 징용자#유골 봉환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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