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국민들 “복지보다 일자리”… 포퓰리즘 정권 끝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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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에 우파 대통령 선택
마크리 당선자, 성장우선 정책 공약… “일자리 200만개 창출로 경제회생”
伊출신 건축재벌 집안서 자라, 1991년 피랍… 몸값주고 풀려나기도

아르헨티나에서 12년간 계속돼 온 좌파 정권이 물러나고 우파 정권이 탄생했다. 22일(현지 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 우파 성향의 야당 후보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56)이 당선됐다. 근래 남미 12개 국가 중 우파 정권이 집권한 것은 콜롬비아와 파라과이에 이어 세 번째다.

야당인 ‘공화주의제안당(PRO)’의 마크리 후보는 집권 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FPV)’의 다니엘 시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58)를 53% 대 43%의 득표율(개표 70% 기준)로 눌렀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시올리 주지사는 개표가 진행돼도 격차가 좁혀지지 않자 패배를 인정했다. 마크리 후보 지지자들은 시내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환호했다.

AFP통신은 마크리의 집권에 대해 “아르헨티나 정치를 거의 70년간 지배해온 페론주의의 장악을 깨는 사건”이라고 전했다. 페론주의는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과도한 복지정책을 추진한 정치 이념으로, 1940년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이 처음 주창했다. 노동자 계층의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확대했다가 결국 국가의 생산성 저하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빈곤층이 많은 남미에서는 좌파 정당들이 경제 사정이 악화돼도 분배 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페론주의에는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지금까지 아르헨티나에서는 좌우를 떠나 페론주의의 그늘을 벗어난 정치인은 드물었다.

마크리 후보의 승리는 또 12년간 이어진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에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2003년 집권했고,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돼 연임을 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키르치네르주의(Kirchnerismo)’의 종말”이라고 보도했다. 페론주의를 계승했다고 자처한 키르치네르 부부는 지금까지 인권 탄압에 연루된 인사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강조하면서 자유시장과 개방경제에 반대해 왔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적극 추진했지만 자유경쟁에 의한 시장 논리는 외면해 왔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 군사정권 집권 이후 경기가 후퇴하며 빈번하게 부도 위기를 겪었다. 특히 1990년대 말에는 미국 달러와 페소화 환율을 1 대 1로 고정시켰다가 2001년에는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맞았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집권 이후 감세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빈사 상태였던 경제가 살아나는 듯했지만 2010년부터 다시 급격히 기울었다. 최근엔 인플레이션이 30%까지 치솟고 빈민층이 늘었으며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리 후보는 보호무역주의 대신 시장 개방, 성장 우선 정책을 펴겠다며 대권에 도전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지난주 시올리 후보와의 TV 토론회에서 “10년간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경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놔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폐쇄적인 보호무역주의와 생계비를 국가가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복지 정책에도 반대했다.

마크리 후보는 이른바 ‘금수저’ 출신이다. 이탈리아 출신 토목건축 재벌 집안에서 태어나 1980년대 중반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거쳤다. 1991년 30대 초반일 당시 갱단에 납치돼 12일 동안 갇혀 있다가 수백만 달러의 몸값을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2년간은 아르헨티나의 명문 프로축구클럽 ‘보카 주니어스’를 운영하면서 대중의 인기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2번의 도전 끝에 2007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에 당선됐고, 이후 우파 정당을 결성해 대권에 도전했다. 마크리의 승리가 확정되면 다음 달 10일 4년 임기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마크리의 승리는 주변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정권이 야당 인사를 탄압한다고 비난하며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에서 축출하겠다고 밝혀 왔다. 남미공동시장 내 역학 구도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아르헨티나#마크리#포퓰리즘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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