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도시 노동자의 삶을 바꾼 사무실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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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니킬 서발 지음·김승진 옮김/456쪽·1만8000원·이마
사무직 노동자의 탄생과 업무공간의 변천사 추적
도시와 건축기술의 발달로 ‘칸막이 사무실’ 정형화 돼
IT 발달과 재택근무 도입 후 사무실의 형태 파괴되는 현상
노동자에게 또다른 기회될 수도

19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사무실 풍경. 사무실의 역사는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런 개선은 노동의 효율을 높여 최대한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영자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이마 제공
19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사무실 풍경. 사무실의 역사는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런 개선은 노동의 효율을 높여 최대한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영자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이마 제공
직장인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미생(未生), 갑과 을, 땅콩회항 같은 말들이 최근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부유했다. 누군가 이런 직장인들의 애환의 역사를 담은 기록은 없을까.

이 책은 직장인이 일하는 사무실 공간의 디자인과 변천사를 통해 직장인의 애환을 담아냈다. 사무원 입장에서 본 ‘사무 공간의 사회학’ 혹은 ‘사무실의 역사’라고 부를 만하다.

흔히 떠올리는 사무실 모습. 큐비클(cubicle·칸막이로 갇힌 작은 방)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직원들이 그 안에 들어앉아 불빛 아래 각자 컴퓨터를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무실에 대한 만족도는 낮다. 1997년 미국의 사무용 가구 업체 스틸케이스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가 ‘이런 형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미국의 경우 1880년까지 사무직 종사자는 전체 노동인구의 5%가 안 되는 18만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대도시였던 뉴욕의 경우 사무원은 하인과 블루칼라 노동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직업군이었다.

사무실의 확장은 건축 기술의 진보 덕분이었다. 1860년 무렵 철골이 쓰이면서 건물을 더 높이 지을 수 있게 됐다. 1870년 즈음에는 엘리베이터가 건물에 적용됐다. 1874년에는 타자기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2년 뒤에는 벨의 전화기가 특허를 받았다. 20세기 건축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건축가 중 한 명인 르코르뷔지에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무실 형태인 유리 건물을 보편화한 인물이다. 사무실의 인프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1910년에는 미국에 사무직원이 442만 명에 이르렀다.

근대 사무원들이 쉬지 않고 일하도록 설계한 사람은 바로 경영학자 프레더릭 테일러였다. 별명이 ‘미스터 스피디’였던 테일러는 노동을 최소 단위로 분할해 가장 효율적인 노동의 조건을 설계한 학자였다. 그가 설계한 테일러리즘에 따라 사무원들은 분초 단위까지 쪼개 만든 빡빡한 노동 조건을 견뎌야만 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를 위한 사회주의를 만들겠다던 레닌도 테일러리즘을 찬양하며 소련에 도입하려 했다. 레닌은 당시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정확한 작업 방법의 정교화 등을 담은 테일러 시스템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1970년대 정보통신을 통한 혁신의 진원지인 실리콘밸리가 형성되면서 사무실도 변화를 맞았다. 1980년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통신 기술의 발달로 재택근무 등이 늘면 사무실이 텅 비어 창고나 주거 공간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예측대로 되진 않았지만 이후 실리콘밸리에서는 구글 사옥처럼 사원의 안락함을 극대화해 농구장과 수영장을 갖춘 일터가 등장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재택근무의 활성화로 책상과 의자가 놓인 전형적인 형태의 사무실이 사라지는 현상을 노동자들이 지위를 잃어버리고 경영진에 순응하는 쪽으로 가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노동자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활성화되는 것이 노동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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