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활짝 핀 경리단길 꿈틀대는 연남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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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상권 vs 지는 상권]-BC카드 빅데이터 분석
빅데이터로 본 ‘뜨는 상권, 지는 상권’

요즘 가장 뜨고 있는 상권인 서울 경리단길.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요즘 가장 뜨고 있는 상권인 서울 경리단길.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을 나와 남산 3호 터널 방향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이국적인 가게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골목 사이사이엔 테이블이 한두 개뿐인 작은 식당과 카페들이 개성을 뽐낸다. 추로스, 케이크 등 디저트 가게 앞엔 젊은 여성들이 길게 줄을 섰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경리단길이다.

거리 초입에 있는 국군재정관리단의 옛 이름 육군중앙경리단에서 이름을 딴 경리단길은 요즘 서울 시내 상권 중에서도 가장 ‘핫’한 곳이다. 동아일보는 BC카드의 지리정보 기반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gCRM을 활용해 서울 10곳 등 전국 주요 상권 30곳의 성장세와 연령대별, 성별 매출 등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경리단길은 2013년 이후 3년간 BC카드 매출액이 연평균 49%씩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카드 매출액이 연평균 7% 증가한 것에 비하면 7배에 이른다. 전국 30개 주요 상권 중 매출액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로, 최근 3년간 매출이 연평균 61%씩 늘었다.

뜨는 상권에는 20대가 있었다. 20대 매출 비중이 높은 홍익대 앞, 가로수길, 이태원, 연남동 등은 전체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 서울 강남, 이태원, 홍대 앞 등 전통상권보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연남동 등 ‘옆 동네 상권(위성상권)’이 뜨는 현상도 뚜렷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점령한 전통상권의 기계적인 서비스에 실망한 20, 30대 젊은이들이 개성과 문화가 있는 위성상권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역 주변 매출 4% 늘 때, 강북 경리단길은 49% 껑충 ▼

“오빤 강남 스타일.”

3년 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 수 24억 건을 넘기면서 서울 강남은 전 세계가 아는 동네가 됐다. 서울 강남역 상권은 매출액 기준으로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큰 상권이지만, 성장세는 예전만 못하다. 이제 스타일을 얘기하려면 강남역이 아닌 다른 곳을 가야 한다.

강남역 상권은 한남대교 남단에서 현대자동차 본사가 있는 염곡 사거리까지 뻗은 강남대로 중에서도 지하철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약 770m에 이르는 거리를 가리킨다. 4일 오후 미세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강남에는 화려한 대형 매장들이 고객을 맞고 있었지만, 강남만의 특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로변은 비싼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점령했다.

신논현역 사거리 교보문고부터 강남역까지 강남대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자 국내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인 네이처리퍼블릭, 에뛰드, 스킨푸드가 연이어 들어서 있다. 스킨푸드는 강남에서는 강남역 지하상가에서만 매장을 운영하다 지난달 31일 이곳에 새로 문을 열었다. 밖에서 매장을 지켜보던 본사 관계자는 “임차료가 무척 비싸지만, 홍보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도 매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좀 더 내려가자 또 다른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와 더페이스샵, 아리따움 점원들이 길을 가는 행인들에게 사은품을 나눠 주며 영업에 열을 올렸다.

강남역 인근의 부동산 대표 A 씨는 “대로변에 있는 100m²(약 30평) 크기 1층 매장 임차료는 보증금 5억∼10억 원에 월세 1억 원가량”이라며 “2, 3년 전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나 카페가 많았지만 지금은 수익률이 높은 화장품 매장과 지오다노, 자라, 에잇세컨즈 등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 매장이 대세”라고 전했다.

BC카드의 지리정보 기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서울 강남역 상권은 BC카드 매출액 기준으로 연평균 4%(2015년 10∼12월은 추정치) 성장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서울 경리단길 매출이 49% 급증한 데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BC카드 회원들이 서울에서 사용한 카드 대금이 2013년 이후 연평균 7%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동네보다 강남에서 덜 썼다는 얘기가 된다.

뜨는 강북, 지는 강남

“홍대는 너무 뻔하잖아요. 여긴 가게도 독특하고 볼거리도 많아 좋아요.”

1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민센터 앞. 동네 아주머니는 이제 네 살이 된 아이가 갓난아기 때 입던 옷가지와 장난감을 잔뜩 싸들고 좌판을 폈다. 인근에서 떡볶이 가게를 하는 청년들은 한 양동이 가득 떡볶이를 담아 와 지나가는 손님들을 잡아끈다.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열리는 연남동 마을장터는 동네 주민뿐 아니라 외부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홍익대와 연희동 사이 연남동은 몇 년 새 ‘강북의 가로수길’로 떠올랐다. 1980년대부터 화교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으며 들어선 오래된 중식당과 기사식당이 있던 골목엔 젊은 예술가와 셰프들이 상점을 열며 새로운 문화에 목마른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오랜 세월이 켜켜이 녹아든 동진시장은 오가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가을이면 노랗게 은행잎이 물드는 경의선숲길 공원은 ‘연트럴파크’(연남동과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합성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도심에 여유를 준다. 4일 오후 친구와 함께 연남동을 찾은 대학생 최하나 씨(23)는 “홍대는 너무 사람이 많고 번잡해서 요즘엔 홍대 대신 연남동을 찾는다”며 “작년 말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도 ‘연남동 거기 가 봤느냐’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이 강북보다 잘나간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서울 시내 대표적인 10개 상권의 최근 3년간 매출액 증가 추세를 보면 경리단길(49%), 연남동(34%), 홍대(26%) 등 강북 지역 상권의 매출이 강남(4%), 서래마을(12%), 청담(13%) 등 강남 지역 상권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전통 상권보다는 ‘옆 동네’ 상권이 뜬다는 것이다. 강남이나 이태원, 홍대 등 오래된 상권이 점차 개성을 잃고 번잡해지면서 젊은이들은 좀 더 특색 있는 곳을 찾아 ‘옆 동네’로 옮겨가고 있다. 일종의 ‘위성 상권’인 셈이다. 이태원 옆 경리단길이나 홍대 옆 연남동이 대표적인 예다.

경리단길에서 위스키바를 운영하는 이득수 씨(31)는 “강남은 뻔한 카페나 고깃집들이 많은데 경리단길은 프랜차이즈가 없고 젊은 사장이 하는 개성 있는 디저트나 퓨전 음식점이 많다”며 “주 소비층인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들은 뻔한 곳을 싫어해 경리단길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20대 가는 곳이 뜬다

뜨는 상권을 찾으려면 20대가 어디에서 지갑을 여는지 보면 된다. 서울의 10개 상권에서 모두 20대의 매출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경리단길과 연남동, 서촌의 경우 올해 3분기(7∼9월)에 20대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1분기(1∼3월)와 비교할 때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서울 시내 상권 중 홍대는 20대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올해 1∼9월 홍대 전체 매출 중 20대는 46.6%를 차지했다. 홍대 상권의 손님 절반은 20대인 셈이다. 홍대에 이어 20대 매출이 많은 곳은 가로수길로 37.7%를 차지했다. 30대 매출 비중이 높은 곳은 이태원(38.3%), 청담(33.1%) 등으로 나타났다. 40대 이상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서래마을, 서촌, 청담에서 비중이 높았다.

BC카드 관계자는 “20대는 상권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소비층”이라며 “20대 중에서도 특히 대학생 남녀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여성의 소비가 두드러지는 경리단길, 서촌 등의 매출 증가세가 높았다”고 분석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20대 젊은 여성이 몰리는 곳에는 자연스레 남성들도 따라오기 때문에 상권이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20대가 상권을 주도하게 된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과 맞물려 있다. 대학생 김윤정 씨(23)는 “포털사이트 검색은 대부분 광고라 믿지 않는다”며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연남동이나 경리단길 맛집 등을 검색해 가 보고 싶은 곳을 찾아본다”고 말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SNS 소문을 타고 신흥 상권들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남성보다는 입소문에 민감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20, 30대 여성이 상권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담선 6만2000원, 연남동선 1만9000원

상권의 특색이 다르듯, 상권마다 소비 행태도 저마다 달랐다. 올해 3분기까지 서울 시내 10개 상권의 카드 이용 금액을 보면 소비자들은 청담동에서 카드를 한번 긁을 때마다 평균 6만2000원을 사용했고 연남동에선 1만9180원을 써 큰 격차가 있었다. 청담동에 이어 카드 결제 건당 이용 금액이 많은 곳은 강남(4만6590원), 가로수길(3만5360원), 서래마을(3만2190원) 등이었다. 카드 결제 건당 금액은 강남 지역이 강북에 비해 훨씬 높다는 얘기다.

상권별 결제 건당 평균 이용 금액은 어디에 돈을 쓰는지와 큰 관계가 있다. 청담동에서는 여성 정장과 미용실, 의원 등에서의 매출이 평균 이용액을 끌어올렸다. 청담동에 즐비한 고가의 의류 매장에서는 평균 23만5580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로수길에서도 여성 의류 업종 이용이 많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브랜드 의류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고객에게 보여 주기 위해 마련한 매장을 말한다.

경리단길, 연남동과 같은 위성 상권의 경우 요식업을 중심으로 상권이 커지고 있다. 미군부대와 가까운 경리단길은 지리적인 특성상 이태원과 함께 이국적인 음식 문화를 즐길 수 있어 서양 음식점 매출이 타 요식업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역 상권에서는 의원 이용이 두드러졌다. 강남대로변과 이면도로 고층빌딩에는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등이 들어서 있다. 강남역 상권 의원에서는 결제 건당 평균 24만 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상권에서 여성은 자주, 남성은 크게 지갑을 열었다. 가로수길의 경우 여성의 매출 비중은 62.3%로 남성보다 높았는데, 건당 결제 금액은 남성이 3만6820원으로 여성(3만4540원)보다 많았다.

평균 이용 금액이 가장 많은 청담의 경우 서울 시내 상권 중 유일하게 여성의 건당 이용금액이 더 높았는데, 여성의 고가 미용실 이용과 의류 구매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남동(53.1%), 이태원(54.1%) 상권의 경우 남성의 매출 비중이 여성보다 높았다.

신민기 minki@donga.com·박민우 기자
#경리단길#연남동#빅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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