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보지 않아도 바람을 느낄 수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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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보이지 않아/안 에르보 글, 그림/김벼리 옮김/48쪽·2만2000원/한울림어린이

‘바람은 무슨 색일까?’라는 질문에는 바람에도 색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색을 본 사람이 있을까요? 바람에 색깔이 없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바람의 색이 궁금할 수도 있을 거예요.

색깔이란 개념은 눈이라는 기관이 기능하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상상만 할 뿐이지요. ‘바람은 보이지 않아’의 원제목은 ‘바람은 무슨 색일까?’입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던 시각장애를 가진 소년이 작가 안 에르보에게 했던 질문이라고 해요. 그 물음이 작가를 사로잡은 까닭에 탄생한 것이 이 책입니다.

소년은 바람의 색이 궁금해 길을 나섭니다. 맨 처음 만난 건 늙은 개였어요. 바람의 색깔은 들판 가득한 꽃향기로 물든 색, 빛바랜 자신의 털색이라고 늙은 개가 답해 줍니다. 꽃이 핀 들판을 달릴 때 늙어 빛바랜 털 사이로 스미는 바람의 느낌이 향기로 전해집니다. 책장을 넘기니 나무 뒤에 숨어서 듣던 늑대가 이렇게 말해 주네요. 숲 속에 깔린 젖은 흙이 품고 있는 어둠의 색이라고요.

여러 가지 채색기법은 과하지 않게, 형태는 제한된 소년의 감각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명확히 반대되는 색감으로 보여주는 강한 대비가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나란히 펼쳐진 두 쪽의 그림은 형태와 색, 구도와 비례가 짝으로 만나 이야기에 윤기를 더해 줍니다.

구멍을 내거나 코팅을 더해 손끝의 촉감으로도 읽을 수가 있어요. 바람을 알게 된 소년을 뒤로하고 책장을 덮으며 가만히 눈을 감아 봅니다. 보이지 않을 때 선명해지는 감각들이 바람의 색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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