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한글 진흥 책임 조직은 어디에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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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준 서울여대 교수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
훈민정음은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나? 한글 진흥을 말하자면 한번 되짚을 필요가 있다. 세종이 570여 년 전에 경복궁 어딘가에서 새 문자를 만들었다. 어떻게? 더 쉽고 더 편리하고 더 쓸모 있게 만들었다. 왜? 소통의 가치를 깊이 깨달았다. 얼과 말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극 정성으로 문화 창조에 도전했다. 이 땅의 민족혼을 다시 깨워 살렸다. 그래서 한글을 고귀한 유산으로 받들어 높이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이 인류사에 없던 의사소통 체계임을 확신케 한다. 소리와 꼴과 뜻을 하나의 이치로 이어 낸 원리나 특성만으로도 이미 다른 지역 문자들의 역할이나 표기 기능을 뛰어넘었다. 우주의 이치를 응용해 천지자연의 만물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각기호를 만든 것이다. 이는 의사소통 체계의 혁명이다. 그뿐인가.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할 교훈까지 담았다. ‘사람의 역할과 구실의 소중함’을 자모 생성과 초·중·종성 원리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다. 보통 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떠한가. 먼저 한글 진흥의 책임 조직은 어디에 있는가. 문화체육관광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통일부, 서울시, 여주시, 세종시, 울산시…. 한글 진흥 연결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소관 부처조차 불분명하니 중재나 조정도 쉽지 않다. 이런 상태의 한글을 세계화하자는 것은 우격다짐이고 어불성설이다. 훈민정음 발생지로 추정되는 경복궁 어디에도 한글 관련 안내나 기념물 하나 없고 세종 나신 터에는 초라한 표지석이 덩그렇게 놓였을 뿐이다. 세종 나신 터와 한글 발생지를 이어 줄 경복궁 영추문도 굳게 닫혔고 남의 한글과 북의 조선글은 자모 이름도 서로 다르다. 격물치지 없이 성의정심이 따라올 리 없다. 한글 진흥을 위한 최고의 권한을 가진 곳, 책임질 조직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글이 통합형 소통 매체라는 점과 전통·문화를 꽃피워 낼 깊은 뿌리라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대중 소통에 중심을 둬야 하고 실용 글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곱고 바른 글자 체계, 일상 글꼴의 뼈대부터 바로 갖춰야 한다. 글자 교구 교재에서부터 컴퓨터나 각종 단말기의 글자판, 글자가 화면에 뿌려지고 출력되는 모든 체계를 아울러 살펴야 한다. 얼 말 글꼴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통합 한글 체계를 바로 세우자.

그렇다면 한글 진흥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한글의 표정과 활용 여건이 곧 국가의 상징과 이미지로 연결된다. 한글이 올라가면 대한민국도 더 당당해진다. 둘째, 한글이 더 좋아지면 의사소통 전반의 체계가 매끄러워진다. 이 체계가 잘 짜이면 더 풍요로운 삶,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트는 셈이다. 얼 말 글꼴이 하나의 이치로 이어진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국민 자긍심도 따라서 올라간다. 자긍심이 높아지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창의력과 실행력도 따라서 향상된다. 이는 곧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이어진다. 넷째,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다. 문자 발명 이후 인류의 삶이 다르고 한글 이후의 우리 삶이 달라진 것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한글을 만드는 일은 곧 더 나은 인류의 삶을 실현하는 일이다. 국가 비전으로 삼을 만한 매력 넘치는 이상이다. 국립한글진흥원을 세울 명분과 가치는 분명하다. 주저 없이 추진해 현재의 문제점도 알리고 한글의 특성이나 우수성도 더 이해하기 쉽게 끌어내야 한다. 한글을 제대로 살리고 알리는 일은 바로 감동을 나누는 일이고 그런 감동이 우리를 더 나은 세상 쪽으로 이끌 것이다.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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