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짝사랑으로 끝날 것인가… ‘테마파크 유치 잔혹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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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인천, 경남 등 지자체 추진
대규모 영화 테마파크 현장 가보니

18일 찾은 인천 연수구 송도 무비파크 터 인근은 인적이 뜸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울타리에는 2008년부터 추진하다 무산된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라는 표시가 아직도 선명하지만 울타리 안쪽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인천=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18일 찾은 인천 연수구 송도 무비파크 터 인근은 인적이 뜸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울타리에는 2008년부터 추진하다 무산된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라는 표시가 아직도 선명하지만 울타리 안쪽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인천=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국제테마파크, 제발 이번만큼은 공염불이 아니기를’

18일 경기 화성시 송산지구 국제테마파크 예정지 입구인 시1리 마을에 붙은 플래카드의 글귀다. 인근 부동산 사무실 관계자는 “플래카드에는 1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는 테마파크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애증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4200만 m²(약 127만 평)의 거대한 테마파크 예정지에는 현재 갈대만 가득했다.

같은 날 인천 연수구 송도 국제테마파크 예정지. 이 땅을 둘러싼 흰 울타리에는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코리아’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2008년부터 추진해 온 테마파크 유치가 진척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기도와 인천, 경남 등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이 수년 전부터 대규모 영화 테마파크를 추진하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착공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제 ‘테마파크 유치 잔혹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 말만 무성한 영화 테마파크 어디까지

국내에서 최초로 테마파크를 추진한 곳은 경기도다. 2007년 11월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는 화성시 송산지구에 미국 유니버설사와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내용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유니버설이 콘텐츠를 제공하고 롯데그룹이 시행하는 계획이 추진됐다. 하지만 땅 주인인 수자원공사와 롯데가 땅값 등으로 갈등을 빚다 사업이 무산됐다.

화성 테마파크 사업이 다시 힘을 얻은 것은 올해 7월. 정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국제테마파크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방안이 논의됐기 때문이다. 테마파크 예정지의 땅 주인인 한국수자원공사는 17일 사업자 재공모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인천시도 테마파크 꿈을 꾸고 있다. 시는 2008년 연수구의 옛 대우자동차판매 터 49만9500m²(약 14만8000평)에 미국 파라마운트사와 테마파크를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사업은 무산됐다. 인천은 이번에는 사업 파트너를 바꿨다. 올해 6월 유정복 인천시장은 미국을 방문해 20세기폭스 영화사와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경남도 유치에 나섰다. 지난해 7월 홍준표 지사는 20세기폭스사와 창원 웅동지구 280만 m²(약 84만7000평)에 테마파크를 개발한다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지자체들이 유치에 나서는 이유는 테마파크의 경제적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킹콩’ ‘죠스’ 등의 영화 테마로 놀이기구를 갖춘 유니버설 스튜디오, 미키마우스 등 디즈니 작품의 캐릭터를 활용한 디즈니랜드 등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플로리다의 월트디즈니월드는 지난해 1933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관광객(1400만 명)보다 많다.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는 매년 1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자체장들 생색내기용?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유치 욕심만 클 뿐 ‘짝사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유치가 부정적인 이유로 우선 우리나라는 내수 규모가 작아 수익성이 낮다는 점이다. 기존 사업의 경우 MOU 단계를 넘어 구체화된 적이 없다.

고정민 홍익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교수는 “콘텐츠 공급 업체인 디즈니, 유니버설 등은 로열티만 받고 사업의 위험을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위험은 시행자의 몫인데 국내 대기업도 수조 원씩 투자해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겨울이 길고 혹독하게 춥기 때문에 테마파크의 가동 시간이 줄어들어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디즈니와 유니버설은 국내 시장의 수익성을 우려해 각각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 테마파크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 테마파크가 잇따라 들어서면 국내 테마파크 건설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권유홍 한림국제대학원대 컨벤션이벤트경영학과 교수는 “지자체장이 급하게 서두르는데, 막상 실무 수준에서는 수익성 등 조건을 맞추기 힘들다”며 “중국에 테마파크들이 생기면 유치의 꿈은 사실상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지자체가 테마파크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정치 논리 때문이다.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이 지역 주민에게 계속 ‘희망 고문’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건설 컨설턴트는 “국내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테마파크를 시행할 수 있는 기업은 테마파크 운영 경험이 있는 롯데그룹(롯데월드), 삼성그룹(에버랜드) 정도”라며 “그런데 화성의 사례처럼 롯데조차도 사업비를 버거워하는 수준이다. 테마파크라는 신기루를 지자체장들이 그만 우려먹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화성·인천=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이새샘 기자
#국제테마파크#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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