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이어 공산주의도 꾸짖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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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사상 아닌 인민에게 봉사하라”
권력 남용하는 관료주의 비판… 反체제인사 등과의 만남은 불발
병상의 피델 카스트로 만나 대화… 美가톨릭 89%“교황 개혁행보 지지”

역사적인 쿠바 방문 이틀째를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현지 시간) 오전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집전한 대규모 미사에서 “사상(ideas)이 아닌 인민(people)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고 설파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포함한 수만 명이 참석한 이날 미사에서 교황은 “봉사는 전혀 이데올로기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상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에 대해 봉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1959년 혁명 후 56년 동안 카스트로 형제의 사회주의 독재 체제에서 살아온 쿠바인들에 대해 국제사회의 희망을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2012년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세 번째로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과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얼굴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이 있는 아바나 광장에서 스페인어로 미사를 집전해 쿠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교황은 “특정한 이익을 얻는 자리로 가는 사다리를 제일 먼저 기어오르기 위해 남에게 봉사하지 않고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산당 독재국가에서 관료주의에 찌든 쿠바 권력자들에 대한 경고로 들리기에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연설에서 쿠바 권력자들에게 반체제 운동가들과의 화해도 권고했지만 이날 오후 늦게 예정됐던 반체제 운동가들과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열악한 쿠바의 정치 상황을 항의하려던 쿠바 반체제 인사 30∼40명은 미사 직전 경찰에 끌려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미사를 마친 교황은 병상에 누워있는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89)을 자택으로 찾아가 4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최근 작성한 회칙을 포함한 여러 저술과 신학 책 두 권 등을 선물했으며 카스트로 전 의장은 브라질의 대표적 해방신학자인 프레이 베투 신부와 자신의 대화를 담은 책 ‘피델과 종교’를 답례로 증정했다.

평소 자본주의 병폐를 비판해온 교황은 이날 저녁 쿠바 아바나 성당에서 수백 명의 사제, 수녀, 신학생을 상대로 한 기도회에서 “교회가 가난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성직자들이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빈자와 약자를 돕는 데 더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교황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둔 채 즉흥 연설을 통해 쿠바의 청년들을 향해 “이 세상을 다른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꾸라”고 조언했다.

한편 20일 뉴욕타임스와 CBS방송 공동 여론조사 결과 미국 가톨릭 신자의 89%는 최근 교황의 개혁적 행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황이 이끄는 개혁 방향을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53%는 ‘강력히 지지한다’, 26%는 ‘어느 정도 지지한다’고 답했다. 교황은 3박 4일의 쿠바 일정을 마친 후 22일 오후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2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하며 24일 교황으로서 역대 최초로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이설 기자
#자본주의#공산주의#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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