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교감 vs 교환… 자본주의 시대 당신의 연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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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의 탄생/베스 베일리 지음·백준걸 옮김/338쪽·1만6000원·앨피

데이트는 ‘남녀가 집 밖에서 만나 소일하며 친밀하게 사귀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집 밖’이다.

하지만 데이트는 20세기 초까진 집 밖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당시 연애의 형식은 남자가 여자 집에 직접 찾아가 격식을 갖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에 남자를 맞이할 장소가 없는 가난한 하층민들에겐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발달로 1920년대 극장 카페 놀이공원 등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눈이 맞은 남녀가 밖에서 만나 즐기는 일이 잦아졌고 이것이 데이트가 됐다. 데이트는 단지 남녀가 함께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적극적 소비 행위를 의미했다.

데이트 비용은 당연히 남자 몫이었다. 여성의 경제력이 부족했던 점과 돈으로 환심을 사려는 남자의 체면치레가 맞아떨어진 것.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과 비슷해진 요즘도 그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사치와 과시가 기본 요건인 데이트는 자본주의 교환경제의 산물이라고 본다. “남자가 돈을 내는 대신 여성은 남성의 권력을 승인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1920∼1965년 데이트 제도에 대한 연구서다.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한 남녀가 곧장 성관계를 갖는 사례도 있는 요즘, 20세기 전반 미국의 ‘결혼 장려운동’ 등을 다룬 책 내용에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데이트의 역사와 관습, 남녀의 권력 관계, 소비 행위 등을 짚어줌으로써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데이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여겼던 데이트를 관습과 자본주의에 얽매인 관계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면 세상이 너무 삭막해질 수도 있겠지만.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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