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뒤틀린 고전동화에 비친 우리 사회의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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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구병모 지음/292쪽·1만2000원·창비

구병모 씨는 청소년소설과 성인소설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작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개 성인과 청소년 독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내용으로 읽힌다.

‘빨간구두당’은 잘 알려진 안데르센 동화와 그림 형제 민담 등을 변주한 작품 모음이어서 얼핏 청소년 독자를 떠올리게 되지만, 실은 성인물에 가깝다.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에 사회 비판 의식을 담았다. 때마침 최근 오늘의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돼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집이다.

표제작 ‘빨간구두당’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프로 쓰였다. 원작은 빨간 구두를 얻어 신은 소녀가 구두를 벗지 못하고 계속 춤을 추다 발목을 자른 뒤에야 구두로부터 벗어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여기에 흑과 백, 회색만 있는 도시라는 설정을 세운다.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소녀가 이 도시에 나타나자 일부 사람의 눈에 ‘빨강’이라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에서 그 소녀를 화형한 뒤에도 잘린 발목에 신긴 빨간 구두가 남아 돌아다니고, 빨간색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구두를 쫓아다니면서 자신들을 ‘빨간구두당’이라고 부른다. 허영에 대한 징벌이라는 종교적 도덕성이 강조된 안데르센의 원작과 달리, 구 씨의 ‘빨간구두당’에는 획일적인 사회에서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반추가 담겨 있다.

‘화갑소녀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변주다. 이야기는 좀더 잔혹하다.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고아 성냥팔이 소녀는 먹을 것과 잘 곳을 얻고자, 불을 일으키는 힘을 만든다는 거대한 ‘화광(火光) 공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막상 그가 일하게 된 공장은 단순 육체노동이 반복되고 동료들이 코피를 쏟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곳이다. 풍요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비루해져 가는 21세기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자’를 비튼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 러시아 민담 ‘커다란 순무’를 변주한 ‘커다란 순무’ 등 8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고전 동화를 뒤집는 이야기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주변부의 삶의 상처라는 주제의식을 놓지 않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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