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자 특별법 10년째 낮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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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조는 진료비뿐… 후유증 대물림 2세대 지원은 아예 없어
‘日 치료비 전액지급’ 판결이후 과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박물관에서 ‘서울에서 만난 한일 원폭 피해자’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원정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박물관에서 ‘서울에서 만난 한일 원폭 피해자’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원정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광복 70주년은 다른 의미로 원폭 피해의 고통이 70년이나 됐다는 뜻입니다.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죠.”

8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평화박물관에서 만난 한정순 씨(56·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한 씨의 부모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있다가 피폭됐다. 2세대인 한 씨는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으로 4차례나 수술을 받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아들도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이날 박물관에는 한 씨 등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피해자들이 모였다. 마침 이날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는 한국 내 원폭 피해자에게도 일본 정부가 치료비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고대하던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열린 만남이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마냥 밝지 않았다. 원폭 피해자의 고통이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원폭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원자폭탄피해자 및 피해자 자녀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다. 피해자와 자녀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이고 의료·생활 지원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법안은 2005년 첫 발의 이후 번번이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도 새로 발의됐으나 아직 해당 상임위(보건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새로운 특별법 신설이 까다로운 데다 다른 전쟁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현재 원폭 피해자들이 받는 금전적 지원은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원호수당(재해수당)과 의료비, 국내 정부가 지급하는 진료보조비 등이다. 고령으로 피해자가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어 특별법 제정을 더 늦춰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원정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77)은 “원폭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차원에서도 하루빨리 (특별법)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1945년 당시 4만 명으로 추정된 국내 원폭 피해자는 70년이 지난 현재 2545명(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 인원 기준)으로 줄었다. 협회 회원의 평균 연령은 82.5세다.

피폭 후유증의 대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2, 3세대를 위한 장기적인 지원정책도 절실하다. 2005년 당시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원폭 피해자 2세대는 7698명. 이는 피해를 등록한 1세대를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라 실제 2세대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 원폭2세환우회에 가입한 1300여 명을 제외하고는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정부 차원의 피해 2세대 지원은 전무하다.

한편 이번 최고재판소 판결을 놓고 일본 언론들도 당연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9일 사설에서 “법 아래 평등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당연한 판단”이라며 “피폭자들의 고령화가 진행 중인 만큼 이번 판결을 마지막으로 임시변통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판결 직후 홈페이지에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신속한 의료비 심사 지급 절차가 진행되도록 오사카(大阪) 부(府)와 함께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송 당사자가 아닌 재외피폭자에게도 의료비 지급을 위한 세칙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원폭피해자#특별법#2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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