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마르크스와 쇤베르크의 공통점? 진리도 예술작품처럼 몸으로 느낄 수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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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박영욱 지음/384쪽·1만9800원·바다출판사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을 펴낸 박영욱 교수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는 “실연당하면 친구들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과거를 잊어라’고 조언한다”며 “이는 자신의 가치 기준을 허물면서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니체의 허무주의와 유사하다.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도 구체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에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바다출판사 제공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는 “실연당하면 친구들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과거를 잊어라’고 조언한다”며 “이는 자신의 가치 기준을 허물면서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니체의 허무주의와 유사하다.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도 구체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에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바다출판사 제공
비트겐슈타인,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조르주 바타유….

이들의 철학 사상은 거대한 통찰력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용이 난해해 ‘머리가 아프다’는 의미다.

왜 어려울까? 27일 만난 박영욱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49)는 “철학이나 사상이 머릿속에 떠도는 추상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철학 사상을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게 만들면 이해하기 훨씬 쉽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교수가 이 책을 낸 이유다. 이 책은 사상가 25명의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이론, 개념을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알기 쉽게 풀어냈다.

“사상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에요.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겁니다. 현대음악가 쇤베르크와 사회주의 사상가 마르크스를 볼까요. 둘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죠. 쇤베르크는 멜로디, 화음이 없는 무성(無性)음악 시대를 열었죠. 전통적인 조성(調性)음악이 자연법칙인 양 숭배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새 법칙을 발견하려고 한 거죠. 자연법칙처럼 자본주의를 숭배하는 사회를 비판한 마르크스의 핵심과 맞닿아 있어요.”

그는 “진리는 마치 예술품처럼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화가 에스허르의 경우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다시 위로 올라가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그림 ‘폭포’를 남겼다. 이 그림은 ‘철수는 사람이거나 사람이 아니다’ 같은, 절대적으로 참이지만 의미가 없는 ‘항진명제’, 혹은 ‘철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아니다’라는 항상 거짓이 될 수밖에 없는 ‘모순명제’와 이를 통해 인위적 논리 세계를 구축하려던 비트겐슈타인 사상과 연결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시각적으로 완벽한 ‘다비드’상에 비해 다소 거칠죠. 그럼에도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조각상의 거친 표면을 온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에요. ‘세계의 의미는 인간의 지성이 아닌 몸에 축적된 체험에서 발생한다’는 현상학자 메를로퐁티의 생각과 일맥상통합니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음악가 라 몬테 영과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도 마찬가지다.

“숲이나 강,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고 싶은 영에게 일정한 박자와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기존 음악으로는 자연의 소리를 담을 수 없었어요. 악보에 담는다는 것은 자연을 분절하여 일정 공간에 넣는다는 것인데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한 음을 세게 내리치는 방식으로 자연을 표현했죠. 베르그송 역시 ‘인간의 생명은 양적으로 나타내거나 공간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미술, 사진, 음악, 조각, 철학을 두루 연결시키는 박 교수의 해박함이 놀라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끼워 맞추기’ 식으로 예술 작품과 철학 사상을 연결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하하. 책에 나온 사상가와 예술 작품의 조합은 대부분 제 선택에 의해 이뤄졌어요. 자의적 해석이니 틀릴 수도, ‘이게 뭐냐’며 비난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과거엔 예술 작품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득하고, 소통하면서 공감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봅니다. 예술과 철학을 사람들에게 소통시키는 작업을 계속 할 겁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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