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냥감에 무섭게 집중하는 참매… 그 野性, 내 고통을 씻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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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헬렌 맥도널드 지음·공경희 옮김/456쪽·1만5000원·판미동

저자 헬렌 맥도널드가 참매 ‘메이블’과 함께한 모습. 아버지를 잃고 삶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은 맥도널드는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슬픔을 극복한다. 민음사 제공
저자 헬렌 맥도널드가 참매 ‘메이블’과 함께한 모습. 아버지를 잃고 삶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은 맥도널드는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슬픔을 극복한다. 민음사 제공
“참매들은 죽음, 곤경과 관련 있었다. 무시무시하고 옅은 눈을 가진 사이코패스들이 삼림지대의 잡목림에 살면서 사냥감을 죽였다. (…) 300미터 상공에서의 숨 막히는 습격, 바람을 가를 때 날개에서 나는 캔버스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도 좋았다.”(44쪽)

사냥감에 무섭게 집중하는 참매를 보는 것은 짜릿하다. 그런데 그런 참매를 기른다고 생각해 보자. 엄청난 기 싸움부터 해야 할 터이다. 지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훈련시켜야 하고, 오락가락하는 성격이라 훈련 타이밍도 잘 맞춰야 한다. 개나 고양이처럼 주인과 교감하거나 주인을 위로해준다는 느낌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저자에 따르면 참매는 사이코패스다!). 이렇게 엄청나게 몰입해야 하는 ‘참매 길들이기’를 왜 하려고 할까?

여자는 아버지를 잃었다. 병원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을 만큼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깊이 사랑했던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여자는 광기에 들린 것 같다. 몸은 차디찬데 침대에 누우면 온몸이 곧바로 활활 타버릴 것 같다. 그런데 여자에겐 할 일이 없다. 남편도, 자식도 없고 직장도 없다. 여자는 물질에, 사랑에, 상실을 멈추어줄 무엇이든 갈급했고,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움켜잡으려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이때 그는 참매를 한 마리 사서 길러보기로 결심한다. 어릴 적 매를 좋아해 매에 관한 책을 읽고 매와 어울렸던 경험도 있는 그다. 참매 길들이기가 녹록지 않다는 걸 웬만큼 알지만, 길고도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슬픔을 걷어내기 위해 여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듯 참매에 매달린다.

앞서 말했듯 참매는 오로지 사냥감에 집중한다. 여자가 키우는 아기 참매 메이블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하는 일은 끈기 있게 매를 훈련시키고 매의 잔혹한 먹이 사냥을 지켜보는 것이다. “꿩이 나온다. 흐리고 뿌연 근육과 깃털 덩어리가 튀어나오고, 매는 산울타리에서 그것을 향해 내리꽂는다. 그러자 심장과 머리와 앞으로의 가능성을 연결하는 모든 선이, 나를 매와 꿩, 삶과 죽음과 잇는 모든 선이 뚜렷해진다. (…) 매는 폭력적인 죽음을 가하는 것을 그만둔다. 메이블은 아이가 된다. 나는 엄마가 아기에게 밥을 먹이듯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매와 함께 꿩의 털을 뽑기 시작한다.”

저자는 어느새 동물과 부대끼는 게 아니라 동물을 찬찬히 바라봄으로써 고통과 거리를 두게 된다. 야생인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여자는 날것이었던 슬픔을 보듬어간다. 메이블의 발에 가죽 줄을 달고 조금씩 날리다가 줄 없이 자유롭게 날리는 장면에선 여자가 자신의 상처를 날려버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논픽션이다. 평범한 한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이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면서 영국 언론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하는 ‘2014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존슨상, 영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코스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명성을 들었을 때는 평이한 줄거리에 반신반의했는데, 읽어 보니 이해가 됐다. 부모든 연인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을 때 느끼는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저자는 담담하고도 차분한 문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저자가 느끼는 슬픔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느닷없이 없어질 때 그 상처를 극복하고자 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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