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뚫어 송유관 턴… 81억 ‘두더지 기름도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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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주유소-주차장 빌린뒤 작업… 용인-순천-김천 등 전국 무대
경찰, 2개 조직 29명 붙잡아

송유관로가 묻혀 있는 인근 지역의 주유소를 임차한 뒤 지하 터널을 파서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하는 수법으로 80억 원대의 기름을 훔쳐온 2개 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수절도 등 혐의로 박모 씨(48)와 김모 씨(48) 등 16명을 구속하고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박 씨 일당 20명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인천 서구의 한 주유소를 빌려 지하 터널을 판 뒤 송유관에서 기름 60만 L(11억 원 상당)를 빼돌리는 등 경기 평택 용인, 전남 순천, 경북 김천 등 전국 7곳에서 450만 L(81억 원 상당)를 훔친 혐의다. 이들은 주유소 내 숙직실이나 보일러실을 신발장 등으로 위장한 뒤 격벽을 설치하고 지하 터널을 파 송유관에 구멍을 내고 특수밸브와 호스를 연결해 기름을 빼냈다. 터널은 깊이 2.5m, 길이 10∼50m로, 주로 밤에 땅굴 작업을 했고 삽은 짧게 특수 제작했다. 단속에 대비해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했으며 수개월 동안 일한 아르바이트생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게 했다. 지난해 1월에는 평택에서 경찰에 범행 사실이 드러나자 주유소 바지사장 역할을 하던 정모 씨(47)가 검찰에 위장 자수해 이른바 ‘꼬리 자르기’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 번에 대량으로 기름을 훔칠 경우 대한송유관공사 유압관리 시스템에 적발된다는 사실을 알고 소량의 기름을 수시로 훔쳤다. 빼낸 기름은 위장 영업 중인 주유소에서 판매하거나 도매상 격인 저유소에 팔아 넘겼다.

또 다른 조직인 김 씨 일당 9명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인천과 전남 순천지역 송유관로 주변 주차장 부지를 빌린 뒤 송유관로까지 땅을 파 기름 13만 L(2억 원 상당)를 훔쳤다. 김 씨 일당은 탱크로리 차량이 일반 주차장에 드나들면 의심을 살 수 있어 공사차량인 것처럼 덤프트럭(20t)을 불법 개조한 뒤 훔친 기름을 운반했다.

경찰은 “송유관 공사의 유압체크 시스템은 절도가 의심되더라도 반경 2.5∼10km 정도까지만 확인돼 현장 단속이 쉽지 않다”며 “전국 조직과 철저한 분업 체계를 갖춘 기업형 조직을 적발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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