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학살에 침묵… 印尼 국민들 지금도 후유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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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개봉 다큐 ‘침묵의 시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방한

27일 서울 사당동 엣나인필름에서 만난 오펜하이머 감독은 “거짓말과 감추기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깨뜨린다. 신뢰 없이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7일 서울 사당동 엣나인필름에서 만난 오펜하이머 감독은 “거짓말과 감추기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깨뜨린다. 신뢰 없이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가해자들 중 몇 명과 대면할 때는 카메라를 한 대만 가져가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경우를 대비해 장비를 줄인 거죠.”

다음 달 3일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15세 이상) 개봉을 앞두고 영화를 연출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41)이 27일 한국을 찾았다. 이 작품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로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포함해 5관왕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과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보여줍니다. 당시 학살 가담자들이 지금도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진상이 한 번도 제대로 규명된 적이 없죠.”

인도네시아 학살은 당시 수하르토가 이끌던 군부가 정변을 일으킨 공산주의자를 응징한다며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해 군부에 반대하는 이들까지 죽인 사건이다. 그 수가 약 100만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학살로 형을 잃은 아디가 가해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디가 가해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위험하다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아디는 ‘우리 아버지를 봐라. 나이가 들어 죽은 형조차 잊었지만 여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채 살고 있다. 이 공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가해자 중에는 아디의 이웃 주민, 심지어 친척도 있다. 가해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공적’을 자랑하며 학살 당시를 재연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사죄는커녕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며 아디를 협박하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변명한다.

지난해 11월 영화가 인도네시아에서 상영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시 사건이 범죄였다고 인정했다. 전국의 역사 교사들은 교과 과정이 학살을 정당화한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경찰과 군대의 압력으로 상영 취소나 중단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도 이런 폭력의 과거가 있죠. 그 과거를 미화하거나 덮으려는 시도도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침묵을 깨지 않는 한, 과거는 언제까지고 우리를 사로잡을 거라는 사실을 관객들이 느끼기 바랍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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