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와 고국 지키려 전역 미룹니다” 新안보세대 등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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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 접촉 타결]
전역 자진연기 장병 50명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 전역을 연기한 육군 제5기갑여단 병장들(위 사진 왼쪽)과 백령도 해병대 장우민 병장(위 오른쪽 사진)이 24일
 국가 수호 결의를 다지고 있다. 아래는 장병들의 전역 연기 소식을 알리는 육군 페이스북. 육군·해병대 제공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 전역을 연기한 육군 제5기갑여단 병장들(위 사진 왼쪽)과 백령도 해병대 장우민 병장(위 오른쪽 사진)이 24일 국가 수호 결의를 다지고 있다. 아래는 장병들의 전역 연기 소식을 알리는 육군 페이스북. 육군·해병대 제공
북한 포격 도발로 남북 간 군사 충돌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한국의 2030 세대는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대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번 기회에 북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확실한 사과 없이는 대화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계속 확성기 방송을 해야 한다”며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청년층의 목소리도 크다. 이에 대해 ‘신(新)안보세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1, 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에 이어 최근 지뢰 도발까지 북한의 잇따른 도발 행위를 겪은 20대와, 2000년 6·15 평화선언을 보며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가졌지만 “쌀 주고 돈 줬지만 변한 것이 뭐가 있느냐”며 냉소적으로 변한 30대가 주축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박모 씨(30)는 “대학생 때는 대북 포용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반복되는 북한 도발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며 “북한 내부의 불확실성이 과거보다 커진 만큼 앞으로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단호한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4일 육군에 따르면 전역을 연기하는 장병이 50명에 달한다. 15사단 GOP 대대에서 근무하는 조기현 병장(23)은 “나처럼 일반전방초소(GOP)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전우가 적 지뢰에 부상한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취업을 미룬 장병도 있다.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조민수 병장(22)은 25일 전역한 뒤 9월부터 첫 출근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북한 도발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백령도의 해병대 소속 장우민 병장(23)도 24일 전역 신고를 마치고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려다 전우를 두고 갈 수 없어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남광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많은 병사가 북한 지뢰 도발로 같은 또래 동료 2명이 하반신을 크게 다치는 걸 목격했다”며 “북한의 도발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더는 묵과할 수 없음을 확고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지뢰 도발을 통해 ‘북한=실질적인 위협’으로 느낀 젊은이가 많았다. 김의진 씨(27)는 “전에는 별 걱정이 없었지만 지뢰 도발에 이어 포격을 가해 왔다는 점이 확인돼 북한은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이후 이와 관련된 유언비어는 5년 동안 계속됐다. 북한 소행이라고 민관 합동조사단이 최종 결론을 내렸는데도 인터넷에서는 “천안함 폭침은 미군 잠수함이 들이받은 것”, “천안함은 좌초 후 이스라엘 잠수함과 충돌했다”라는 등의 괴담이 퍼져 나갔다. 야당 정치인과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도 “합동조사단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유언비어에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이번에도 SNS에서는 “휴전선 포격 사건, 알고 보니 그네정부(박근혜 정부)의 자작극? 연천군 주민조차도 북이 쏜 포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는 등의 일부 유언비어가 유포되긴 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21일 트위터에 ‘연천 주민들은 북쪽 포격을 못 들었다고 한다’는 미디어오늘 기사를 리트윗(재전송)했지만 도리어 시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들이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 등을 겪으며 유언비어를 대하는 자세가 성숙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대해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교수는 “젊은 세대는 대북 관계를 통일 담론이 아닌 외교 문제로 인식한다. 동북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북한보다 훨씬 높다는 것에 자신감을 갖고 그에 걸맞게 대응하라는 요구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쟁을 불사하자는 단순 강경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참에 박살내 버리자’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도 있는데 분단의 역사적 의미와 전쟁의 참혹함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라며 “‘전쟁하자’는 주장의 배경에는 취업난 등 현실 속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욕구도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해병대 출신인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58)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만일의 상황이 발생하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해병 가족들과 최전방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밝혔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호경·김재형 기자
#전역#자진연기#신안보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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