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중국이 우리 편이라는 ‘중국夢’을 깨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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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한 북한에는 비난도 않고 남북에 자제 촉구한 中·러시아
전승절 열병식에 나란히 서면 韓美동맹·한미일 3각 공조
세계인이 어떻게 볼까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미국 아닌 ‘중국과 함께’인가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누가 누구 편인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다. 우리 군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고, 우리 땅에 포격을 한 쪽은 북한 김정은 집단인데 중국과 러시아는 남북 양쪽에 자제를 하란다. 미국이 북한에 자제를 촉구함으로써 든든한 동맹은 이런 것이다 알려 주고, 심지어 일본도 한미 협력을 발표해 그래도 한미일 3각 공조가 살아 있구나 느끼게 해 준 것과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요즘 북한과 부쩍 가까워진 러시아는 제쳐 둔다 해도 다음 달 3일 우리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고대한다는 중국이 “긴장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행동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데는 배신감마저 느낀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을 자극하니 관두라는 얘기다.

중국은 늘 그런 식이었다. 2010년 3월 26일 북의 천안함 폭침 당시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는 “관련 각 측이 큰 차원에서 적절히 처리하기를 기대한다”고 염장을 질렀다. 4월 말 이명박(MB) 대통령이 중국에서 후진타오 주석을 만났을 때도 그는 3일 뒤에 있을 김정일의 방중에 대해 귀띔도 해 주지 않아 온 국민의 뒤통수를 쳤다.

그래도 그때는 중국과 북한은 혈맹이고, MB가 한미 관계에 공들인 나머지 한중 관계가 악화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방에서 ‘친중(親中) 비미(非美) 외교’ 소리가 나오는데도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보는 중국의 눈이 전과 다름없다는 건 기막힌 일이다.

물론 중국은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 편에만 서 있어 중국의 적극적인 태도만이 한반도 내 조정자가 아무도 없는 상황을 면하게 해 줄 것”이라는 관영 환추시보 사설은 그래서 중국은 북한 편에 섰다는 고백과 마찬가지다. “중국마저 북한을 버린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은 깨지고 만다”는, 화정평화재단이 2011년에 펴낸 ‘제국의 미래’ 속의 논리와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놀라울 정도다.

차라리 다행이다. 이제는 중국이 북한 아닌 우리 편이라는 중국몽(中國夢)에서 깨어나 중국이 원래 양다리 걸치기의 달인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올인, 몰빵, 다걸기 같은 말을 좋아하지만 중국어엔 그런 말도 없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교토삼굴(狡토三窟·교활한 토끼는 도망갈 굴을 세 개나 만들어 놓는다)이고, 그들이 최고로 치는 전략이 오랑캐를 시켜 오랑캐를 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유라시아의 중심 국가’라는 중국몽을 품은 시진핑 주석이 한국의 지경학적(地經學的) 가치를 재발견했다 해도,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김정은 정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반도 현상 유지가 되고, 동북아 안정은 중국의 핵심 이익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북이 도발하는 것도 미국 때문이고 개혁 개방을 못 하는 것도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정권교체하고 싶은 나라는 중국인데 그럴 수가 없어 북한을 위협하는 거다”, “북핵은 생존을 위한 것이므로 미국이 체제 보장만 해주면 북핵 문제는 해결된다” 같은 중국 당국자들과 학자들의 지적은 북한, 그리고 종북 좌파의 주장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니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한다면서도 북에 핵 포기를 압박할 리 없다. 그보다는 남북한에 양다리 걸쳐 한반도 전체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한미일 3각 공조를 끊어 내면서 미국을 동아시아에서 확실히 밀어내는 게 실리적이라는 계산이 박근혜 정부를 만나 더 확실해졌다.

어느 정부보다 좋은 한중 관계를 이룩했다고 믿는 대통령은 방중 성과로 조국에 큰 선물을 안기겠다는 중국몽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사실이 이번 북의 도발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 14억 인구의 거대한 제국 중국은 ‘약소국 대통령’과 친하다고 해서 세계 전략을 바꾸는 나라가 아니다.

북한 편에서 남북 양측의 자제를 촉구했던 중국, 러시아 지도자와 나란히 서서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볼 대통령은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원하는 한중일 정상회의, 북핵 문제 해결, 또는 통일 대박의 대가로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반대, 주한미군 철수, 친중 한반도 등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지를. 그리고 만일 북이 자멸(自滅)을 각오하고 우리에게 핵 위협을 한다면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 전화를 할 것인지도.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중국몽#북한#러시아#전승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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