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 살길은 혁신… IT 무장한 창농 기업가 육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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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농업대학 15년째 이끄는 민승규 삼성경제硏 부사장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이 8일 경북 포항시 상옥마을에서 이 마을을 ‘스마일 빌리지’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포항시 제공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이 8일 경북 포항시 상옥마을에서 이 마을을 ‘스마일 빌리지’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포항시 제공
“농업을 ‘한물간 산업’으로 여기면 곤란합니다. 농업에 이야기를 담거나 특별한 기술을 넣으면 평범한 농부도 첨단 벤처 못지않은 기업을 경영하는 ‘혁신가’가 될 수 있어요.”

7일 경북 포항시 죽장면의 상옥마을. 농민들과 포항시 공무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강연자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상옥마을은 사과 산지로 유명하지만 사과 재배에만 집중하다 보니 농민들 소득은 제자리였다. 이 강연자는 사과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고 사과 와인과 사과 스낵을 만드는 한편 사과 따기 등 사과와 관련된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사과 마을’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이 강연자는 농촌에서 ‘신(新)상록수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한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54). 농업경제학 박사인 그는 삼성연 연구원 시절이던 2001년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세웠다. 지금은 졸업생 1500여 명을 배출한 ‘부농(富農) 사관학교’로 대학 교수, 셰프, 공무원 등도 강의를 들으러 찾아온다. 민 부사장은 2008년 대통령농수산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농림부 제1차관과 농촌진흥청장을 지내고 2012년 삼성연으로 복귀했다. 그는 최근 삼성그룹이 지원하는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창조 농업 프로젝트를 이끌며 상옥마을 명예이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가 농촌 현장에 눈을 돌린 때는 1997년. 농민들이 컴퓨터만 다룰 줄 알아도 더 나은 생활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해 컴퓨터 15대를 들고 동료들과 경기 화성군을 찾았다. 농민들에게 정보화 교육을 했더니 일부 농민은 한술 더 떠 대학에 진학해 영농법인을 세웠다. 그는 이처럼 ‘숨겨진 보석’을 발굴해 농업 경영자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다 벤처 붐이 한창이던 2000년에 농업과 벤처를 접목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벤처 요람인 대전 대덕밸리에서 벤처 사업가와 농민의 만남을 주선했다. 벤처 현장을 둘러본 농민들은 ‘경영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개인 자격으로 봉사했던 그에게 또 다른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는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찾아오기 쉬운 충남 금산군의 문을 두드렸고 금산군은 선뜻 폐교를 빌려줬다. 벤처농업대학은 2001년 이 폐교에서 탄생했다.

수업은 1년 과정으로 매달 한 차례 주말에 1박 2일로 진행됐다. 재정 지원이 없어 농민들에게 60만 원의 수업료도 받았다. 농민들은 명함과 e메일 주소가 없으면 입학할 수 없었다. 또 졸업논문 대신 농업 사업계획서를 내게 했다. 배운 지식을 농업에 활용하라는 뜻이었다. 농민들은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심야토론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 농업이 망하려면’ 등의 주제를 두고 토론했다. 농민들은 정부 보조금에 기대기보다는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몸으로 깨달았다. 그 역시 휴일을 쪼개 금산을 오갔다. 힘들게 시작한 일이라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 민 부사장 사무실 벽에는 커다란 대한민국 지도가 붙어 있다. 지도엔 스티커가 여기저기 빼곡하게 붙어 있다. 그가 다녀온 지역이다. 벤처농업대 수업이 없는 주말에 특별한 일 없으면 현장으로 간다. 2001년부터 전국을 세 번째 돌고 있다.

“박사 딴 뒤 첫 일자리가 농촌진흥청 계약직이었어요. 당시 농진청에는 대한민국을 헐벗음에서 벗어나게 해 준 농업과학자인 우장춘 박사 묘소가 있었는데 이를 보고 세상에 쓸모 있는 농업경제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농업 기업가 1만 명을 양성하는 게 꿈입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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