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벌레와 인간의 조상이 같다고?… 조선 실학자, 동물로 人界를 이해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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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의 동물원/최지원 지음/360쪽·1만7000원·알렙
‘유학자의 동물원’을 쓴 최지원 씨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 기록을 통해 이들의 인간관을 들여다보고자 했다는 최지원 씨. 최지원 씨 제공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 기록을 통해 이들의 인간관을 들여다보고자 했다는 최지원 씨. 최지원 씨 제공
“용강현에 나이 90 넘긴 해옹이 살았는데 낚시로 업을 삼았다. 그가 ‘왜 나를 물 옆에 두지 않느냐’고 하여 아들이 한 대야의 물을 가져다주었다. 늙은이가 손발을 담그자 점점 물고기로 화했다. 수개월이 지나자 농어가 돼 아들이 바다에 놓아주었다.”(해동잡록)

조선 중기 학자 권별이 쓴 해동잡록의 이 문장은 할리우드 영화 ‘빅 피쉬’(2003년)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도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커다란 물고기로 변해 가족을 떠난다. 종(種)의 구분이 엄격한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 사람과 동물은 하나의 뿌리를 둔 동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동물에 대한 관찰 기록을 토대로 학자들의 인간관을 탐구한다.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인간은 벌레들의 동물원 속 한 개체일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과 같은 조상을 가진 존재”라고 썼다.

옛사람들이 인간을 벌거벗은 벌레라는 뜻의 ‘나충(裸蟲)’으로 지칭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저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문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언어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에게 책에 얽힌 사연을 들어봤다.

―조선 실학자들의 동물 연구는 어떤 점이 독특한가.

“마치 요즘의 동물행태학이나 인지과학 연구처럼 동물의 행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려고 한 점이 흥미롭다. 이전 시대에는 사람의 본성을 따져보고 나서 동물의 그것을 판단하는 데 그쳤다. 완전히 상반된 관점인 셈이다. 동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게 취미인데 여기에서 본 동물 관찰 방식과 실학자들의 기록이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책에서 빠르고 쉬운 정보 처리 과정을 선호하는 뇌 신경활동 등을 근거로 사람의 마음을 기계에 비유했는데….

“조금 극단적인 주장으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나는 한 치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현대과학은 우리 생각의 내용을 만드는 게 결국 무의식 혹은 유전자라고 설명한다. 조선 실학자들은 세상의 우연한 사건들이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마음을 휘어잡게 된다고 봤다. 마음의 작용이 기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기계처럼 취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자아가 원하는 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본질을 파악했다.”

―행복을 추구한 실학자들의 시도는 결국 성공했나.

“결과만 놓고 보면 성공적이지 못했다. 실학자들이 옳은 질문을 했지만 정답을 얻지는 못했다고 본다.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인간 이성이 논리보다는 감정에 휘둘린다는 점에서 무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뇌 과학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책에 고전 원문이 꽤 많이 인용됐는데….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문을 기본으로 했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내가 직접 원문을 해석했다. 몇 해 전 1년 동안 강원도에서 한학을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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