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어떤 인간은 범죄자로 태어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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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해부/에이드리언 레인 지음/이윤호 옮김/640쪽·2만5000원·흐름출판
‘범죄, 환경보다 유전 영향이 크다’… 다양한 사례와 연구 연결시켜 증명
미래엔 뇌 사진으로 범죄 예측할 것

‘범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체사레 롬브로소가 존속살인자, 살인강간범 등 범죄자의 두개골(위)과 얼굴 형태를 조사한 사진. 분석 결과 범죄자는 뇌 반구 아래에 위치한 소뇌 쪽 공간이 작았으며 큰 턱, 경사진 이마 등 유사한 외형을 가졌다. 흐름출판 제공
‘범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체사레 롬브로소가 존속살인자, 살인강간범 등 범죄자의 두개골(위)과 얼굴 형태를 조사한 사진. 분석 결과 범죄자는 뇌 반구 아래에 위치한 소뇌 쪽 공간이 작았으며 큰 턱, 경사진 이마 등 유사한 외형을 가졌다. 흐름출판 제공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하지만 이 책을 읽을수록 ‘인간을 미워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신경범죄학 교수인 저자는 ‘왜 어떤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사람은 착하게 살아가는가’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35년 동안 범죄자를 연구했다. 사이코패스를 더 잘 알고 싶어 교도소에서 4년간 근무하고, 연쇄살인범 등 강력범을 수백 명이나 인터뷰했다. 각종 실험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한 줄로 요약된다.

“어떤 인간은 범죄자로 태어난다.”

자칫 ‘돌에 맞을’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유전자와 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도 그간 범죄학은 범죄 원인을 불우한 가정, 사회 불만 등 환경적 요인으로만 분석했다”고 반박한다. 그는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세밀한 범죄자 연구 결과를 촘촘히 연결시켜 그 주장을 밀어붙인다. 63명을 살해한 미국인 랜디 크래프트와 31명의 환자를 재미로 죽인 간호사 제인 토펀 등 각종 범죄 사례는 스릴러물과 같은 긴장을 준다.

우선, 가벼운 마음으로 손금을 보자. 저자에 따르면 손바닥 상단부 긴 손금이 하나로 이어졌다면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 진화가 덜 된 경우 나타나는 신체 특징이기 때문. 진화가 덜 될수록 공격 성향이 강하다. 약지가 검지보다 길어도 마찬가지. 태아 시절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돼 약지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이 호르몬이 많으면 공격 성향이 강해진다. 범죄자 중에는 약지가 긴 사람이 많다.

반면 환경은 생각만큼 범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연구 결과다. 미국인 제프리 랜드리건은 1962년 보육원에 버려진 인물이다. 그는 지질학자인 아버지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가 있는 평온한 가정에 입양돼 좋은 교육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랜드리건은 절도를 일삼았고 친구를 살해했다. 감옥에 간 그는 우연히 자신과 똑같이 닮은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 대런 힐이란 살인범이다. 놀랍게도 힐은 랜드리건의 아버지였고, 힐의 아버지 역시 범죄자였다.

또 다른 연구 결과도 인용된다. 범죄자 가족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해 보니 모노아민 옥시다제A(MAOA)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MAOA는 충동성, 인지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면 높은 충동성과 중독성이 초래된다. 저자가 살인자 41명의 뇌를 촬영한 결과 이들의 뇌는 일반인에 비해 전전두엽피질 활성화가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범죄의 씨’가 따로 있다는 위험한 결론처럼 보인다. 물론 저자는 “범죄자로 태어난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란 뜻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하다. 그가 유전자와 뇌 중심으로 범죄를 연구한 이유는 타고난 성향도 사회와 환경, 개인적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란다. 실제 비타민과 오메가3가 들어간 과일주스를 매일 마시고 어린이의 공격 성향이 42%나 감소했다. 뇌의 모든 부분이 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고려할 때, 자신의 주장이 공격받을 소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쓴 대목처럼 보인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2030년 즈음이면 뇌, 유전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범죄 가능성 알고리즘을 개발해 사전에 범죄 가능성을 예측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진단한다. 뇌 사진과 DNA를 등록하고 학교기록, 의료기록을 통합해 분석하면 5년 내 폭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을 70% 이상 맞힐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최종적으로 범죄예측시스템을 무조건 프라이버시나 인권 침해로 몰아붙이지 말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일정 한도 내에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20명을 살해한 후 사체를 훼손한 것으로 알려진 유영철을 떠올리면 저자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오싹하다. 나의 뇌 촬영 사진이 또 다른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그것과 비슷하다면? 혹시 어릴 적 비타민과 오메가3를 덜 먹는다면?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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