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별점’으로 영화 점수 매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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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피부’ 어디까지 개발됐나

조영호 KAIST 교수팀이 개발한 소름 감지용 전자피부. 사람이 공포나 감동을 느낄 때 피부에 돋는 소름을 센서가 감지하게 만들어 인간의 감정을 정량적으로 측정한다. KAIST 제공
조영호 KAIST 교수팀이 개발한 소름 감지용 전자피부. 사람이 공포나 감동을 느낄 때 피부에 돋는 소름을 센서가 감지하게 만들어 인간의 감정을 정량적으로 측정한다. KAIST 제공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자동으로 에어컨이 켜지고, 시각장애인은 소리를 듣지 않고도 피부로 주변의 기압 변화를 감지해 장애물을 피해 간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휴식 경보가 울리고, 영화 관람객은 자동으로 ‘소름 별점’을 매긴다.

혈당 체크나 심장박동수, 맥박 측정 등 주로 의료용으로 개발되던 전자피부가 최근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자피부는 사람의 피부처럼 얇고 부드러우면서 잘 늘어나 몸에 붙일 수 있는 초정밀 센서다.

조영호 KAIST 교수팀이 최근 개발한 스트레스 측정용 전자피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KAIST 제공
조영호 KAIST 교수팀이 최근 개발한 스트레스 측정용 전자피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KAIST 제공
○ 스트레스와 소름 전자피부로 모니터링

조영호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팀은 최근 스트레스를 감지하는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전자피부는 우표 한 장 크기다. 피부 전도도, 온도, 맥박 등 신체 상태를 확인하는 센서들이 한데 붙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코르티솔이 분비되면서 체온이 올라가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조 교수는 “전자피부가 실시간으로 신체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이상 신호를 감지한다”며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 휴식 경보를 보내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터리는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맥박이 뛸 때 생기는 압력을 이용해 전자피부에 전기를 공급하도록 만들어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 없이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

조 교수팀은 공포심을 느끼거나 감동을 받을 때 피부에 돋는 소름을 측정하는 전자피부도 개발했다. 소름이 나면 피부의 입모근(立毛筋)이 움직여 털이 선다. 지름 2mm, 높이 0.2mm인 원뿔형 입모근이 센서에 닿으면 전자피부는 소름이 돋았다고 판단한다. 대개 1cm²당 입모근이 10개 이상 포착되면 소름이 돋은 것으로 본다. 전자피부는 소름의 발생 속도와 크기도 측정한다.

소름 센서는 문화 산업에 활용할 수 있다. 공연을 끝낸 무대 위 가수에게 박수나 환호성을 보내는 대신 소름이 얼마나 돋았는지 측정해 감동의 크기를 잴 수 있다. 영화 선호도를 ‘소름 별점’으로 매길 수도 있다. 조 교수는 “전자피부 개발 초기에는 온도, 습도 등 외부 환경을 인식하는 기능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신체 상태를 측정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전자피부가 사람의 감정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비가 앉을 때 생기는 극히 작은 압력까지 감지할 수 있는 전자피부. 전기 전도도 변화를 감지해 나비가 움직이는 방향도 잡아낸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공
나비가 앉을 때 생기는 극히 작은 압력까지 감지할 수 있는 전자피부. 전기 전도도 변화를 감지해 나비가 움직이는 방향도 잡아낸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공
○ 나비 살포시 앉아도 압력 느낄 만큼 정교해

전자피부는 첨단 로봇에도 사용된다. 기계가 느낀 감각을 전자피부를 통해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하거나 반대로 사람의 움직임을 기계가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게 만든다.

제난 바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팀은 2010년 나비가 살포시 내려앉았을 때 생기는 미세한 압력까지 느낄 수 있는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또 압력이 수직뿐 아니라 수평으로 생길 때도 감지할 수 있게 했다. 나비가 전자피부 위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전자피부를 로봇에 이식하면 인간과 비슷하거나 인간보다 뛰어난 촉감을 가질 수 있다.

데니스 마카로프 독일 켐니츠공대 연구원은 두께가 2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에 불과한 초박막 전자피부가 지구 자기장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1월 21일 자에 발표했다. 이 전자피부를 장갑에 붙이면 손바닥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전자피부 전문가인 김도환 숭실대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교수는 “고양이가 수염으로 기압 차를 감지해 장애물을 피해 가는 것처럼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는 ‘슈퍼 전자피부’ 개발이 한창”이라며 “슈퍼 전자피부를 부착한 로봇은 화재 등 재난 현장에서도 크게 활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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