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스리랑카人 2심도 무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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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새 증인진술 신빙성 없어”… 정액 증거 있지만 강간죄 시효지나

11일 오전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범균) 법정. 피고석에 앉은 스리랑카인 K 씨(49)는 책상에 몸을 반쯤 엎드린 채 앞에 있는 통역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1998년 계명대 신입생 정은희 씨(당시 18세)를 성폭행하고 물건을 훔친 혐의(특수강도강간)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이날 항소심 법정에 다시 섰다.

재판장이 선고 이유를 읽기 시작하자 그는 단어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귀를 세웠다. 새로운 증인 A 씨(스리랑카)가 17년이나 지난 상황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을 믿기 어렵다는 재판장의 말에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이란 걸 알아챈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정 씨의 속옷에서 나온 정액과 K 씨의 유전자(DNA)가 일치해 강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설명에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마침내 재판부가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하자 K 씨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당초 이 사건은 정액이라는 물증이 있기에 특수강간죄만 적용하면 손쉽게 유죄를 받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구지검이 재수사를 개시한 2013년 6월에는 이미 특수강간죄 공소시효(10년)가 지났다. 어쩔 수 없이 학생증과 책 3권, 현금 3000원가량을 훔쳤다는 특수강도죄를 덧붙여 특수강도강간(15년)으로 기소했다. 당시 초임 검사였던 최정민 검사가 낡은 기록을 뒤져 가며 K 씨를 재판에 넘겼지만 물건을 훔친 증거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강간의 증거는 있지만 공소시효를 넘겼고, 물건을 훔친 증거는 없어 무죄라는 결론이다.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 머물던 스리랑카인을 샅샅이 조사해 찾아낸 A 씨의 진술마저 인정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단죄의 기회는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조동주 djc@donga.com / 대구=장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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