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B급의 반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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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친구의 아들은 학창 시절 내내 B등급이었다고 한다. 여름휴가 때 만난 그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평균성적이 80점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농어촌 출신 가산점에 힘입어 한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권유로 ROTC에 지원했을 때도 처음엔 떨어졌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여전히 B학점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 다음 날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 합격자 몇 명이 지원을 포기하는 바람에 제가 들어가게 됐어요.”

제대한 아들은 ROTC 출신을 우대하는 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그 회사도 B급 규모였다. 그러나 아들은 군말 없이 4, 5년 열심히 다니더니 대리를 달았다고 했고, 연이어 놀라운 소식을 전해 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 발탁되었다는 것이다.

B급의 반전이었다. 그의 아들이 옮겨간 회사는 일류 명문대 출신에 해외연수는 기본이고 높은 토익 점수에다 완벽한 자기소개서를 써도 합격이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밤새 기계를 분해하며 놀기를 좋아했다는 것 외에는 별반 두드러진 것도 뛰어난 것도 없던, 어디를 가나 늘 2등급이던 아들이 초일류 기업에 스카우트되었고 지금 그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잘 다니고 있다는 것.

시골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아버지는 아들이 운이 좋은가 보다고 말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아들은 뒤틀리지 않고 제 그릇대로 자연스럽게 잘 자랐으니 좋은 인성을 가졌을 것이다. 또 좋아하던 기계제어 분야의 업무를 맡아 재미있게 궁리해 가며 즐겁게 일할 터이니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를 천거해준 사람도 첫 직장에서 그가 일하는 걸 지켜본 상사였다고 한다.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를 생긴 대로 두지 않고 부모의 ‘기획 상품’으로 만들려고 한다. 남편 친구도 아마 극성 부모였다면 아들이 기계나 만지작거리며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여러 학원을 전전하게 했을 것이다. B급은 되니까 노력하면 A급으로 올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그렇게 쥐어짜서 성적이 약간 올랐다 한들 지금의 자리에 갈 수 있었을까.

기획 상품의 문제는 대부분 그렇듯이 부모의 기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다. 자생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제시한 A안이 아니면 B안에 적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스스로 힘을 기른 사람만이 인생을 반전시킬 수 있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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