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안철수 의원에 대한 당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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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국제부장
허문명 국제부장
한국을 포함한 아태지역을 관장하는 미국 고위 정보당국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국 정보기관이 미국과 어떻게 다른가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한국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너무 많고 정치권, 특히 야당은 국정원을 너무 정략적으로 다룬다”고 했다.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을 거쳐 온 정보기관의 지난날이 스쳐가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요즘에도 야당은 국정원 때리기에 한창이다. 안철수 신경민 의원 등은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심증하에 국정원의 중요한 자료들을 요구하고 있다. 뛰어난 정보요원이 자살하고 국정원이 여느 때와 달리 설득력 있게 해명을 했는데도 공세는 여전하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현대전(戰)은 총성 없는 정보전이며 하늘 땅 바다에 이어 적진(敵陣)의 컴퓨터 서버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 사이버 전쟁 시대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국정원은 대북 안보의 CPU(중앙처리장치)이자 테러와 산업 스파이들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첨병조직이다. 증거도 없이 의혹만 제기해도 야당의 존재감과 지지율이 오를 거라는 셈법을 갖고 있다면 오산이다.

미국 CIA,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를 비롯해 러시아 중국 일본의 정보기관들도 국익을 앞세울 것이냐, 국민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중시할 것이냐 사이에서 갈등한다. 의회는 예산을 통제하고 정보조직의 탈법을 감시하려 하며 정보조직은 법망을 피해서라도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안보와 인권’의 충돌은 의회와 정보기관 간 갈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실상은 어떨까?

먼저 단언컨대 주요 선진국 중에서 정보기관이 이렇게 국회의원들에게 휘둘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다른 나라들은 의원들부터 엄한 법 적용을 받는다. 미국의 경우 의회 정보위원들이 개별적으로 자료를 보관할 수 없고 반출도 일절 금지된다. 정보위 비밀을 누설한 의원들은 윤리위원회로 회부되어 본회의에서 징계를 받는다. 독일 영국 이탈리아도 위반 경중에 따라 최고 징역 2, 3년의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섣불리 국가 기밀을 누설하고 정보기관을 공격했다가는 재선(再選)이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정보위가 열리는 회의 날짜조차 기밀로 취급한다.

국정원장이 수시로 국회에 출석하고 국정원이 보고한 내용을 회의가 끝나자마자 국회 정보위원들이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한국 모습이 이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최근 주요 외신들을 들여다보면 이번에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RCS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35개국(90여 개 기관) 중 이렇게 떠들썩한 나라 역시 한국밖에 없다. 미국 영국 독일 등 대다수 주요 국가들은 구매 사실 확인 및 감청 의혹을 제기하는 일부 언론과 야당에 대해 공식 발표나 대응이 거의 없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범죄자들이 법 집행기관들의 전통적인 수사기법을 피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기관은 새로운 기술을 인지하고 관련 역량을 보유해야 함” 정도의 답을 내놓은 게 전부이다.

안철수 의원에게 당부하고 싶다. 몇몇 정보기술(IT) 전문가들에게 물으니 정보보안업체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은 뛰어난 해킹 방지 프로그램 개발 능력이 국제 수준으로 볼 때 크게 미달되는 수준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안 의원은 근거 없는 국정원 흔들기를 멈췄으면 한다.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이번에 논란이 된 이탈리아 회사를 뛰어넘는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정원도 돕고 세계에 수출도 하는 데 먼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어떨까.

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안철수#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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