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해치지 않아요… 우리 얘기도 들어볼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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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들의 수다/정부희 지음/272쪽·1만5000원·상상의 숲
◇발칙한 생물들/권오길 지음/308쪽·1만3000원·을유문화사

온몸이 바닷물처럼 푸르고 딱지날개에는 하얀 물방울무늬가 있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유리알락하늘소. 동아시아에서 사랑받는 이 벌레는 미국에서는 나무를 해치는 외래종으로 분류돼 박멸의 대상이다. 상상의숲 제공
‘곤충들의 수다’는 여성 생물학자의 섬세한 시선으로 벌레의 사생활과 속사정을 친근하게 그린다. ‘발칙한 생물들’은 75세 노(老)학자가 구수한 우리말로 풀어놓는 벌레 묘사가 정겹다.

‘곤충들의 수다’에는 이들의 수난사가 등장한다. 피해자는 화려한 빛깔의 등딱지를 자랑하는 비단벌레. 천연기념물 496호인 비단벌레는 예부터 최고의 장식 재료였다.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말안장 장식을 만들기 위해 비단벌레 2000여 마리가 학살됐다. 다른 옛날 장식품에도 비단벌레의 등딱지가 흔하게 박혀 있다. 지금은 보기 힘든 비단벌레가 예전에는 흔했던 것일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반면 어릴 때부터 웨딩드레스를 입고 호사를 누리는 벌레도 있다. 신부날개매미충은 배 끝에 하얀 솜털 뭉치를 달고 있는데, 이를 방사형으로 펼치면 마치 웨딩드레스 같다. 식성도 고급이라 인삼에 주둥이를 꽂고 즙을 빨아먹는다.

보양식품으로 각광받는 영지버섯을 끓이다보면 가끔 물에 둥둥 뜨는 게 있는데, 바로 살짝수염벌레다. 하지만 영지버섯이 주식인 이 벌레의 수명은 한 달도 안 된다.

배 꽁무니가 위로 치켜들려 전갈처럼 생긴 밑들이는 암컷이 호화 결혼 혼수품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컷은 큰 벌레를 잡아다가 바쳐야만 암컷과 교미할 수 있다. 암컷은 이 혼수품을 먹는 동안만 교미를 허락하는데, 가끔 혼수품도 없이 겁탈하는 수컷의 정자는 생식관을 막아 수정을 방해한다.

‘발칙한 생물들’에 소개된 작은소참진드기는 요즘 억울하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을 일으키는 매개로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병을 일으키는 플레보바이러스를 가진 녀석들은 0.5%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존재였다. 쇠불알에 붙어 몸무게의 수십 배에 달하는 피를 빨아 몸이 빵빵해진 놈을 잡아다가 닭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닭에게는 영양가 만점의 선지였던 셈이다.

알레르기비염의 주원인인 집먼지진드기를 박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요나 매트리스 0.914m²당 약 10만 마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드기의 주식인 사람의 죽은 살갗 세포(비듬)는 일주일에 약 10g이나 떨어져 양식으로 충분한 분량이다. 진드기들이 “오! 주여, 오늘도 하늘에서 양식이 쏟아집니다”라고 말할 정도의 양이다. 그러니 너무 정갈하게 살 생각, 애당초 버려라.

말라리아 모기를 위한 변명도 들어보자. 원래 이 모기는 보통 때는 동물 피보다는 식물의 즙을 빤다. 하지만 삼일열원충이라는 원생동물에 감염되면 드라큘라로 변신한다. 사실 모기도 삼일열원충에게 양분을 뺏기고 사람 피를 빨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조종당한다. 모기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곤충들의 수다#발칙한 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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