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슈퍼리치, 공정한 수단으론 어렵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권력 위의 권력 슈퍼리치/존 캠프너 지음·김수안 옮김/648쪽·2만5000원·모멘텀

존경받는 대부호가 드문 이유는 뭘까.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슈퍼리치들이 국가와 정치권력으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아 축재를 했다고 비판한다. 동아일보DB
존경받는 대부호가 드문 이유는 뭘까.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슈퍼리치들이 국가와 정치권력으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아 축재를 했다고 비판한다. 동아일보DB
전 세계 대부호들을 다룬 책 중 이만큼 냉소적인 시각과 찬바람 쌩쌩 부는 문체가 곳곳에 배어 있는 책도 드물다.

이전에 나왔던 ‘부자가 되는 법’이나 누가 최고 부자인지를 보여주는 부호 목록을 담은 책이 아니다. 영국의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쓰는지, 평판을 조작하는지, 당대의 부자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를 책에 담았다.

역사상 ‘최고의 부동산 재벌’은 로마시대 장군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그의 부동산 투자는 악랄하고 교활했다. 닭장 같은 공동주택에 불이 나면 노예를 보내 불타고 있는 건물을 사겠다며 위로를 건넨다. 그런 다음 화재를 진압한다. 불탄 건물은 더 많은 백성을 수용하도록 재설계돼 짭짤한 임대 수익을 올린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히’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왼쪽)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운데).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도 교활한 시장 경쟁 전략으로 비판을 받는다. 동아일보DB
러시아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히’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왼쪽)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운데).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도 교활한 시장 경쟁 전략으로 비판을 받는다. 동아일보DB
돈 자랑 제대로 한 인물은 아프리카 말리 제국의 만사 무사 왕이었다. 1324년 그는 4000km 떨어진 메카와 메디나로 순례를 떠난다. 그는 노예 1만2000명에게 2.7kg짜리 금괴를 각자 등에 지고 걷게 했다. 136kg이나 되는 사금과 금덩어리 보따리 100개를 나눠 진 낙타 행렬도 뒤따랐다. 그는 순례길에서 마주친 모든 이에게 황금을 베풀었는데,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금값이 폭락했다.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권력과 결탁한 소수 자본가 세력) 중에서도 최고 부자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는 ‘평판 세탁’의 달인이다. 그는 2007년 러시아 미술품이 런던 소더비 경매에 나오자 이를 모두 최고 감정가를 웃도는 가격에 매입했다. 그 뒤 조국에 영구 전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흡사 문화재 해외 유출을 막은 간송 전형필이 떠오르는 행보다.

하지만 그는 1980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사기, 국가 및 사적 재산 강탈, 뇌물 수수 공모 등으로 8년 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2012년 영국 홍보사에 의뢰해 위키피디아에 실린 자신에 관한 기록을 여러 차례 수정하도록 했다.

창의력 하나로 부를 일궜다는 실리콘밸리의 부호들도 저자의 손가락질을 피해가지 못한다. 2012년 미국 의회는 빌 게이츠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세금 포탈 문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MS는 2009∼2011년 일부 지적재산권을 푸에르토리코의 자회사에 양도하는 수법으로 45억 달러(약 5조1600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는 사업 확장 속도를 높여 경쟁자가 따라잡기 전에 무소불위의 위치를 선점하는 교활한 전략이 빌 게이츠와의 공통점으로 지적됐다.

비판의 화살이 이번에는 월가를 겨눈다. 저자는 미국 최고의 금융사로 꼽히는 골드만삭스를 ‘자본주의가 생산한 가장 수익성이 뛰어난 돈 제조 기계’라고 비꼰다. 그러면서 골드만삭스에 대한 비판을 실은 잡지 ‘롤링스톤스’의 기사를 인용한다. ‘골드만삭스는 돈 냄새가 나기만 하면 어떤 것에서든 인정사정없이 피를 빨아먹는 거대한 흡혈 오징어다.’

골드만삭스의 사업 모델은 기발했다. 대기업과 연기금의 주식을 거래하는 한편 여러 기업에 시장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는 자문 역할을 했다. 1998년 골드만삭스가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을 컨설팅해주고 수천만 달러의 수수료를 받았지만 이 합병으로 2년 이내에 미국 내 자동차 업계는 몰락했다. 하지만 10년 뒤, 골드만삭스는 사모펀드 회사에 어려움을 겪는 크라이슬러 주식의 매입 관련 자문을 제공하고 또 수수료를 챙겼다.

저자는 나가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세계적으로 낮은 세금과 규제완화로 많은 사람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공정한 수단을 통해 성공하는 이는 소수다. 2000년 전에도 그랬듯이, 슈퍼리치가 거둔 성공은 정부, 의회, 중앙은행의 도움 덕분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천국에 가려는 부자들을 보며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들이 코웃음을 칠 것 같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