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재용 ‘뉴 삼성’, 투명경영과 고용확대 책임 막중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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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주주들이 어제 임시주주총회에서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반대를 물리치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승인했다. 양사가 통합 계획을 발표한 지 52일 만에 법정 공방과 우호 지분 확보 등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삼성이 거둔 승리다. 이에 따라 제일모직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고,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9월 1일 출범하는 통합 삼성물산은 이병철, 이건희 회장에 이어 이재용 체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3대 승계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행동하는 투자자’를 자처한 엘리엇이 “합병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게 평가함으로써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듯, 승계 문제가 아니었다면 두 회사가 굳이 합병에 나섰을지 의문이다. 이 부회장은 20대에 제일모직의 전신인 에버랜드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지배 주주가 됐고, 수조 원의 상장(上場) 차익도 얻었다.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인 그가 삼성전자 지분 4%를 가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쳐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강화해 삼성 승계 지위를 굳히려다 엘리엇이라는 복병을 만난 게 이번 ‘합병 전쟁’의 본질이다. 합병 결정 뒤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삼성의 승리는 한국 ‘기업 왕조’의 견고함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어제 주총에서 내국인들로 이뤄진 대다수 소액주주는 합병의 미래가치를 기대하며 삼성의 편에 섰다. 해외 ‘먹튀 자본’을 꺼리고 국익을 생각하는 국민 정서도 작용했을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삼성에 1등 공신인 셈이다. 현대자동차는 주주들의 이익을 무시하고 작년 서울 삼성동의 한전 부지를 감정가의 3배가량인 10조5500억 원에 낙찰받은 뒤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어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도 각각 그제보다 10.39%, 7.73% 하락했다. 소액주주들은 이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삼성을 지지했다. 삼성은 이들에게 큰 빚을 졌다.

삼성과 엘리엇의 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오너의 지분이 적으면서 의사 결정은 오너 경영자 중심으로 불투명하게 이뤄지는 등 지배구조가 취약하다. 언제든지 제2, 제3의 엘리엇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도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방어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뉴 삼성’의 방향타를 쥔 이재용 부회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경영에 나서야 한다. 삼성은 최근 미국 애플과 중국 샤오미 사이에서 고전하면서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삼성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투명한 경영과 고용 확대를 통해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소액주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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