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시스템 붕괴된 사회… 삶과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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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그 이후/셰리 핑크 지음·박중서 옮김/720쪽·2만2000원/알에이치코리아

2005년 8월 1800여 명의 사상자를 낳은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침수된 시내 메모리얼 병원의 상황은 심각했다. 전력이 끊기자 의료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통풍을 위해 창문을 깨자 병실은 비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37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던 환자 등 중환자들이 극도의 고통을 겪었다.

의사들은 심폐소생술 거부(DNR)를 요청한, 병세가 가장 위중한 환자들을 맨 나중에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환자들이 고문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내가 저 환자들이었다면 차라리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라는 말을 꺼낸다. 의료진은 약물을 주입해 일부 환자를 안락사시켰다.

의사 겸 기자인 저자는 카트리나 재해 당시 이 병원에서 닷새 동안 일어난 일을 재구성한 ‘The Deadly Choices at Memorial’ 기사로 201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카트리나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고립됐지만 연방군은 사흘 뒤에야 투입됐고, 휴가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재난이 발생한 뒤 하루가 지나서야 복귀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메모리얼 병원은 당시 미국 정부와 기관이 얼마나 무능력하게 대응했는지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은 한국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사건 관계자들을 500회 넘게 인터뷰하고 당시 정황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며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에서 삶과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고 묻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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