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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2030이 부르는 또 다른 대한민국 ‘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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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2030이 부르는 또 다른 대한민국 ‘헬조선’

조동주 사회부 기자 입력 2015-07-10 03:00수정 2015-07-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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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hell+朝鮮).’

2030세대가 대한민국을 부르는 말입니다. 지옥 같은 조선이란 뜻이죠. 동의어로는 ‘지옥불반도’가 있습니다. 지옥불이 치솟는 반도(半島)라는 의미지요. 그만큼 대한민국은 요즘 젊은이가 살아가기에 점점 척박한 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0대 때 명문대에 가려는 입시전쟁, 20대 때 대기업에 가려는 취업전쟁, 30대 때 혼처를 찾으려는 결혼경쟁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쳐 살아남아도 좀처럼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돌아가신 고인(故人)’ ‘아름다운 미녀(美女)’처럼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자조까지 나옵니다. 이미 조선이 지옥인데 앞에 같은 의미인 헬을 붙였다는 거죠.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한국 사회의 처량한 현실과 부조리를 풍자하는 글을 모아두는 ‘헬조선’이라는 사이트가 인기입니다. 예를 들면 ‘헬조선 직장 입문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불평하지 마라” “억울할수록 입을 봉하라” “반말하는 상사에겐 더욱 공손하게 답하라”는 식으로 직장인의 ‘미덕’을 적어놓은 책을 보여주며 “훌륭한 노예가 되거라!”라고 풍자하는 식입니다. ‘탈조선(조선 탈출)’ 카테고리를 누르면 “탈조선은 불가능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개가 칼을 물고 달려오며 “주인님 어서 자살을!”이라고 외치는 그림이 뜹니다.

헬조선 이용자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날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자책합니다. 사는 게 힘들다는 젊은이의 절규에 “철없는 소리다. 모두 너희들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일갈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풍자지요. 금수저는 태어난 가정의 유복함을 드러내는 최고 수준으로, 그 뒤를 이어 은수저-동수저-흙수저가 있습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는 사회가 주입시키는 대로 죽어라 노력해도 혼자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다는 걸 깨달아 갑니다. 개인의 좌절이 사회구조적 한계 때문이라고 느끼는 젊은이가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미래를 잃어 갑니다.

한국 사회는 현실이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며 일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합니다. 하지만 헬조선에서는 “개처럼 일하면 진짜 개 취급 받는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일하면 결국 남 좋은 일만 하게 된다”는 격언이 공감을 얻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보상을 받기도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면 당장 확실한 보상을 받는다” “고통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 다만 고통이 있다고 성취가 있는 건 아니다”라는 격언도 인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참고 일하는 돌쇠 같은 희생과 근성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이죠.

소설가 장강명의 신작 ‘한국이 싫어서’도 젊은이의 헬조선 인식과 궤를 함께합니다. 이 소설은 평범한 20대 여성이 한국에 염증을 느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떠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SNS에서는 “헬조선의 현실을 정확히 담았다”며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주로 한국 여자로 살아가는 괴로움을 그리고 있는데, 한국 남자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게 괴롭습니다. 한국 남자는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 삶의 가치를 평가받는 게 현실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강요당합니다. 직장 생활이 버거워 그만두려 하면 ‘남자가 돈도 못 번다’며 무능하다는 낙인이 찍힙니다.

그런 남녀가 만나 결혼하니 행복한 가정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요즘 신혼부부들은 대부분 살기 위해 맞벌이를 합니다. 평일 저녁밥은 각자 밖에서 먹고 들어오고 집에선 잠만 자기 일쑤입니다. 집안일은 엄두가 안 나 일주일에 한 번씩 4만∼5만 원을 주고 부르는 조선족 아줌마에게 빨래와 청소만 맡기기도 합니다. 자녀 계획을 물으면 하나같이 손사래 칩니다. 아이가 생기면 하루씩 버티는 지금의 삶이 더 척박해질 거라는 불안감을 호소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보면 자신의 분신이라는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는데 직접 낳아 보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언젠간 낳아야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 실천에 옮길 엄두가 안 나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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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4절에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 하세’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나라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전에는 미우나 고우나 한국 땅에 살아야 했지만 이젠 언제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습니다. 국민을 국가에 잡아두는 게 국가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국민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에게 “너도 한국인이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고 훈계하기엔 세계가 너무 넓습니다.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2030#헬조선#노예#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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