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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100년 캡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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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100년 캡슐’ 열렸다

차준호 기자 입력 2015-07-09 03:00수정 2015-07-09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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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중국학술원 본격 발굴
차이나타운의 비밀을 밝힐 지도 등 소중한 고문서를 확보한 인천대 중국학술원(원장 정종욱) 산하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소속 교수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송승석, 박경석, 김지환, 장정아, 안치영 교수. 아래 사진은 1914년 제작된 인천 청국조계(현 인천 차이나타운) 지도.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인천대 제공
100여 년 전 인천 차이나타운(당시 공식 명칭은 청국조계·淸國租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연간 관광객 500만여 명이 찾는 인천 차이나타운. 그러나 1884년 화교들이 인천에 본격적으로 정착해 타운을 어떻게 형성하고 발전시켰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지도와 자료가 최근 다수 발견됐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원장 정종욱) 산하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소속 교수들은 2년 전 화교들로부터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화교협회 소유의 낡은 창고 열쇠를 넘겨받았다. 교수들은 10여 년간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교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신뢰가 쌓이자 화교들은 2년 전 이 창고를 100여 년 만에 처음 개방했다. 수북이 쌓인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전문 청소업체까지 동원했다. 이를 통해 1910년대를 전후해 당시의 청국조계 등 개항장(開港場)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고문서를 확보했다.

이 중 최근 1914년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일본인 측량기사가 직접 만든 인천 청국조계 측량지도를 복원(보정)하는 데 성공했다. 지도를 보면 청국조계는 1만6500m²(약 5000평)에 불과했다. 현재 차이나타운의 ‘풍미’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삼국지 벽화가 그려진 지점까지가 청국조계의 북쪽 경계였다. 이를 통해 현재의 인천 중구 선린동이 초기 차이나타운(청국조계)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도에는 각 상점의 상호와 면적이 기록돼 있는데 산동동향회(山東同鄕會) 사무실이 눈에 띈다. 1910년대 청나라에서 조선과 인천에 건너온 화교와 쿠리(苦力·청나라 근로자)의 대부분은 산둥(山東) 성 출신이었다. 빨간색 벽돌과 대형 암석 축조 기술이 뛰어났던 쿠리들은 명동성당과 인천 홍예문 건설에도 참여했다. 이 지도를 분석한 교수들에 따르면 1914년 조선총독부가 각국의 조계를 철폐하는 대신에 토지 등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면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목적으로 토지와 건물을 정밀 측량한 지도를 제작했다.

화교협회 창고에서는 쿠리 노동조합의 규약과 1908년 화교 인구 증가로 새롭게 조성된 청국조계인 ‘삼리채’의 토지 지세납부 명세, 조선인천 중화상회 내부 정관 등 다양한 자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대 중국학술원 이정희 교수(48)는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학회에 참석해 이 지도 등을 공개했는데 학계의 큰 반향과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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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교육부의 인문학 연구 최대 프로젝트인 ‘인문한국사업’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중국 관련 책을 발간하고 있다. 김지환 교수가 쓴 ‘철도로 보는 중국 역사’(학고방)는 올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인천대 장정아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소장(중국어중국학과 교수)은 “인천대는 중국 특성화에 강한 의지를 갖고 중국에 진출한 1세대 한국기업 실태조사 등 차이나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며 “화교역사박물관 건립 등 130년에 이르는 화교 역사와 삶을 정리해 한중 공통의 자산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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