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독대” 장담한 이병기 실장, 당청대화 진언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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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회 운영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얼굴을 마주해 관심을 모았다. 청와대는 국회 운영위의 피감기관이다. 그럼에도 운영위원장인 유 원내대표를 박 대통령이 ‘거부’하는 바람에 2일로 예정됐던 결산안 심사와 업무보고가 연기되는 등 파행이 빚어졌다. 국회로 불려온 이 실장에게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의 유승민 찍어내기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조금 비약이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출석했으니 유 원내대표를 청와대가 인정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여기서 말씀드릴 게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여당 원내대표를 거부하는 박 대통령의 상황과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여당 원내대표 한 사람의 거취 문제가 여권의 자중지란을 넘어 국회 파행까지 일으키는 현 상황은 조속히 타개되어야 한다. 어제 국회에서 “대통령과 언제든 독대가 가능하다” “대통령에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한다”고 장담한 이 실장이 꽉 막힌 당청 관계를 풀지 못한다면 누가 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여론조사 지지율뿐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어제 한국갤럽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는 ‘잘한 일’(36%)이라는 응답자가 ‘잘못한 일’(34%)보다 오차범위 안에서 많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국민이 심판하라”고 사실상 사퇴를 요구한 유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사퇴해선 안 된다’(36%)는 응답이 ‘사퇴해야 한다’(31%)보다 우세했다.

새누리당 지지층으로 좁혀 보면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45%)이 사퇴에 반대한다는 응답(26%)을 크게 앞지른다. 대통령의 뜻과 원내대표의 소신이 어긋나는 상황에서는 원내대표가 물러서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는 지지자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사퇴 반대 의견이 앞섰다. 국회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퇴시키는 것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반영한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 의사를 거두지 않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가 계속 버티고, 박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유 원내대표를 거부하는 일이 계속될 경우 양측 모두 패배하는 파국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

국정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대통령과 여당이 서로 완승을 노리고 자존심 대결을 펴는 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의 신의를 저버린 정치’다. 이 실장은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모양새 있는 일보 후퇴를 진언해 국정 정상화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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