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감격의 눈물 흘리는… 美대통령의 ‘통합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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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턴市흑백갈등 보듬은 오바마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우 스위트 더 사∼운드…(놀라운 은총, 얼마나 감미로운가).”

26일(현지 시간) 오후 3시 반경,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 찰스턴대 실내경기장. 17일 백인 우월주의자 딜런 루프의 총기 난사로 희생된 찰스턴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의 영결식장에서 추모사를 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갑자기 반주도 없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 성공회 신부인 존 뉴턴이 1772년에 지은 이 찬송가는 흑인 노예무역에 종사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죄를 사해 준 신의 은총에 감사한다는 내용이다.

CNN 등으로 미 전역에 생중계된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노래에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내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6000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두 일어나 대통령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영결식장의 오르간 주자가 뒤늦게 반주를 넣었지만 합창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일부 흑인 여성들은 두 손으로 대통령을 가리키며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듯한 눈물을 흘렸다. 미리 준비된 연설문에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부분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일부 참모들에게 “내가 부를 수도 있다”고 귀띔을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35분간의 추모사 내내 감정이 북받쳐 보였다. 하지만 그는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성토보다는 신의 은총을 거론하며 이번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대다수 미국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주력했다. 이처럼 위기의 순간에 감동적인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국민의 화합을 이뤄내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겠습니다. 이번 사건이 교회에서 벌어졌다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교회는 흑인들이 적대적인 현실 세계를 피해 인간으로서 살아 있음을, 중요한 존재임을 외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신은 이번에도 신묘한 방식으로 존재함을 보여줬습니다. 범인은 희생자 가족들이 오히려 자신을 용서할 것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이 역시 신의 은총입니다.”

그러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지 추모하는 데 그치지 말고 미국 사회 전체가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의 은총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누구도 인권 문제, 흑백 갈등을 하룻밤 사이에 개선할 수는 없습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오늘 영결식 후 또다시 편안한 침묵에 빠져들고 안주한다면 이는 희생자들이 보여줬던 용서에 대한 배신입니다. 오래된 타성에 젖는다면 우리는 희생자들이 범인을 용서한 용기를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영결식의 분위기가 절정에 오르자 오바마 대통령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높여 “핑크니 목사는 은총을 찾았다”는 말을 시작으로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애도했다. 참석자들은 그때마다 “아멘” “그렇습니다” 등을 외치며 호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들이 일생을 통해 보여준 노력과 가치를 이제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 신의 은총이 미합중국에 계속되기를 바란다”며 추도사를 마쳤다.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중 ‘United’ 단어에 유독 힘을 줘 미국 사회의 통합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미국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의 추도사에 대해 “미국 내 흑인 지위를 변화시킨 촉발제된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에 버금가는 기념비적인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대통령 퇴임 후에도 오래 기억될, 사회 통합에 대한 역대 대통령 최고 수준의 메시지”라고 전했다. 시민들도 “소름(goose bump)이 돋을 만한 명연설이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라 다행이다” 등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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