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무기력하다면, 매니큐어! 김현철의 쇼핑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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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6월 11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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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큐어와 페디큐어로 우리의 마음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손 발톱을 아무렇게나 방치한다면 현재 무기력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손발톱 미용에 집착한다면 이는 남의 시선과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의미다. 다가오는 여름, 당신은 어떤 색깔의 매니큐어, 페디큐어를 선택하겠는가.

2015년 5월 7일, ‘뉴욕 타임스’는 사상 처음으로 한글 기사를 올렸다. 한인들이 장악한 뉴욕 일대 네일업계의 노동 착취와 인종차별, 화학약품의 위험성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용은 씁쓸하기 그지없으나 그만큼 ‘손톱 비즈니스’가 전 세계적 보편성을 띤다는 반증이다. 최근 10년간 네일 아트에 종사하는 인력도 많이 늘었고, 많은 여성들이 이제는 거의 미용실과 비슷한 수준으로 주기적으로 네일 숍을 찾는다. 최근에는 간편하게 붙이는 매니큐어도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니큐어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풍문이 있으나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미 그때부터 요즘 말하는 ‘헤나’를 사용해 손톱에 물을 들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 · 로마 시대부터 상류층 여성들은 이미 매니큐어를 칠하며 유행을 선도했다. 참고로 매니큐어라는 말은 손톱이 아닌 손을 뜻하는 라틴어의 마누스(손)와 큐어(손질)의 합성어이기 때문에, 굳이 원래의 뜻을 풀어 쓰자면 손톱을 가꾸는 행위뿐 아니라 손 마사지나 손 화장 등 손을 관리하는 모든 행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손톱에 바르는 화장품으로서의 매니큐어는 중세로 접어들어 페르시아와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좀 더 풍부한 화학 원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매니큐어의 의미를 알려면 먼저 손톱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 무기력하고 나태해지면 신경조차 안 가는 부위가 바로 손톱이다. 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닌, 그저 긴 손톱을 선호한다면 당신은 최근 무기력해졌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무기력 혹은 무력감의 시작은 대인 관계이니 이 역시 점검해볼 문제다.

반대로 요즘 들어 유달리 매니큐어에 관심이 가거나 네일 숍을 자주 찾는다면 어쩌면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터닝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손톱에 눈이 자꾸 간다는 건 어느 정도 다시 차오를 힘이 생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사자나 호랑이 혹은 재규어가 그러하듯, 사람도 예외는 아닌지라 손톱에 눈이 간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민감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면 발톱을 한껏 내민 야생동물을 떠올려보라(물론 어떤 인간들은 위협적인 상황에서 발톱 대신 오리발을 내밀긴 하지만). 힘은 생겼으나 여전히 경계심이 남아 있고 방어적이다. 그래서 자칫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화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붙이는 손톱은 이럴 때 꽤 유용하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뭔가 내 마음에 확신이 없을 때, 오만 가지 감정으로 온통 머릿속이 뒤범벅일 때, 왠지 나의 태도가 가식같이 느껴지고 진실 되지 못한 것 같아 쭈뼛쭈뼛할 때, 인조 손톱은 불편한 마음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다.

빨간색 매니큐어는 ‘욕정’ 상징
어떤 일을 성취한 후 타인에게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면 누구나 낙심한다. 매니큐어는 나만의 근사한 매력을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행위가 비록 누군가에는 사소하다고 비춰질지 몰라도, 스스로를 달래주는 수단이자 나의 멋진 능력을 재확인시켜주는 수단인 셈이다. 때로는 살면서 어떤 일이 더 값지고 의미 있을까, 무엇에 더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네일 아트에 끌리기도 한다. 이럴 때 진료실(정신과 상담실)에서 보면 보편적으로 잘 칠하지 않는 색이나 블랙에 가까운 색들이 손톱을 뒤덮고 있는데, 색의 선택 역시 그 당시 우리 마음이 필요한 부분을 보상해준다. 획일화할 수 없지만 선택하는 색은 저마다 잠재되어 있던 창의성, 직관, 감성과 같은 면들을 살려준다. 매니큐어 색의 반란(?)은 특히 구속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자유를 갈망하고 있을 무렵 더욱 강렬히 드러난다. 그만큼 내면의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럼 짙은 새빨간 매니큐어는 어떤 심리 상태를 나타낼까? 그렇다. 역시나, 예상했듯, 관능의 상징이다. ‘욕정’이다. 샌들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발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발톱 미용(페디큐어)도 라틴어의 페데스(발)에서 나온 말이다. 발톱만 일컫는 말이 아니라 발에 행할 수 있는 모든 미용을 포괄하는 셈이다. 참고로 발톱은 자신감 혹은 내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상징한다. 발톱을 잘 깎지 않고 내버려두는 건, (이 또한 아주 미적으로 감탄할 정도가 아니라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이어가기를 꺼려하는 무의식의 반영이다. 무슨 일이든 신이 나고 흥이 나면 매사에 활력이 넘치는 법이니까 말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발톱을 다듬거나 손질을 하고 싶다면 이는 평가에 대한 불안, 다시 말해 내가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을지 심하게 걱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삶에서 추구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돌이켜볼 필요도 있는 셈이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무한도전’에 출연해 욕정 전문가로도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대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공감과 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꿈과 현실, 소유와 존재를 애써 구분하는 대신 각종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사람들의 정신적 증상을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남들에겐 장바구니에 담아 충동구매를 막으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바로구매’를 클릭하는 헤비 쇼퍼. 저서로는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세상 안내서 시리즈’ ‘뱀파이어 심리학’ 등이 있다.

글 ·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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