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감동대신 추억만 남긴 거장의 대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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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5일 월요일 맑음. 대화가 필요해.
#159 Chick Corea & Herbie Hancock ‘Homecoming’(1979년)
행콕-코리아 듀오 무대

23일 밤 서울에서 듀오 공연을 펼친 재즈 피아노 거장 허비 행콕(왼쪽)과 칙 코리아. 프라이빗커브 제공
23일 밤 서울에서 듀오 공연을 펼친 재즈 피아노 거장 허비 행콕(왼쪽)과 칙 코리아. 프라이빗커브 제공
‘찰칵!’ 밤의 절정은 애석하게도 두 거장이 나란히 등장한 첫 순간의 시각적 충격에서 끝났다. 역사적이었지만 역사박물관에서 새 역사가 탄생하진 않았다.

23일 밤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찾은 두 피아노 거장 칙 코리아, 허비 행콕의 듀오 무대. 그랜드피아노 두 대 사이에서 기대했던 열띤 전쟁 대신 미지근한 정담만이 오갔다.

콘서트는 90분간 즉흥 연주로 진행됐다. 한때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를 건반으로 보좌했던 둘이 데이비스의 묘비에도 악보가 새겨진 ‘솔라(Solar)’의 주제부를 내비친 헌정은 인상적이었다. 스탠더드 ‘섬데이 마이 프린스 윌 컴(Someday My Prince Will Come)’, 행콕의 ‘캔털루프 아일랜드(Cantaloupe Island)’와 ‘워터멜론 맨(Watermelon Man)’, 코리아의 ‘스페인(Spain)’의 주제와 변주를 제외하면 둘은 절반이 넘는 시간을 조성(調性)과 박자마저 즉흥으로 맞추며 전개했다.

공연 내용은 음반으로 기록된 1978년 듀오 실황만큼 치열하지 못했다. 새로운 어휘도, 서사도 보기 힘들었다. 하는 이도 이해 못할 선문답 같았다. 피아노 현을 두드리거나 신시사이저까지 오가며 주고받은 악절이 인상적인 스토리로 연결되지 못했다. 둘 중에서 더 아쉬웠던 건 행콕이었다. 코리아가 시종 예민하게 행콕의 선율을 모사해 변주하거나 빠른 오스티나토(일정한 음형의 반복)로 화두를 분주히 제시한 반면, 행콕은 이를 두루뭉술한 악절로 눙치다가 악곡 전체를 성급히 종지하곤 했다. 행콕은 신시사이저에 내장된 적절한 음색을 찾느라 너무 긴 시간을 보내버리기도 했다.

오랜만의 재회여서일까. 아니다. 두 사람의 대규모 세계 순회공연이 37년 만이긴 하지만 둘의 ‘대화’는 2013년 이탈리아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QR코드), 미국 뉴욕 블루노트 공연 등에서도 여러 차례 있었다.

록 페스티벌만 한 관객 참여가 이뤄진 후반부는 흥겨웠던 만큼 아쉽기도 했다. 코리아는 ‘스페인’을 아란후에스 협주곡 주제로 열며 청중에게 ‘시-파#-레-(이하 한 옥타브 위)파#-시’의 화성 합창을 시켰는데, 이후 즉흥 선율까지 매우 잘 따라한 객석의 높은 수준에 만족한 나머지 두 거장은 의미 적은 글리산도(건반을 손톱으로 미끄러지면서 훑는 연주법)마저 남발하며 객석과 반응에만 집중했다.

좋은 날 야외무대에서 역사를 마주한 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다음엔 청중, 연주자 모두에게 높은 집중도를 선사하는 실내 공연장에서 둘을 봤으면 한다. 그때까진 두 거장을 이날의 사진과 옛 음반으로 기억하고 싶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행콕#코리아#서울재즈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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