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저금리 시대엔 변화구? 우린 해외주식 직구 던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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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가는 투자자들

회사원 박모 씨(42)는 요즘 국제유가가 급등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신바람이 난다. 주유비를 걱정하는 직장 동료들과 달리 오른 기름값 덕에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박 씨는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해 미국 증시에 상장된 원유 상장지수펀드(ETF)를 직접 샀다. 이른바 ‘해외 주식 직구족(族)’이다.

국제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떨어질 때마다 사들인 ETF가 2000만 원어치. 그는 “100달러에서 반 토막 난 유가가 언젠가는 다시 오를 거라 생각했다”며 “투자금 절반은 최근 유가가 60달러일 때 팔아 벌써 20%가 넘는 수익을 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렇게 환매한 돈을 중국 주식에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 선전과 홍콩 증시의 교차 거래를 허용한 ‘선강퉁’ 시행을 앞두고 현재 수혜 종목을 찾고 있다. 그는 “국내 시장에만 투자해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며 “세계 각국의 다양한 투자 대상을 골라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 1%대 초저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해외 시장으로 눈 돌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저성장·저금리·저수익의 ‘3저(低) 시대’로 접어든 한국 자산시장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앞서 1% 금리에 진입한 일본도 ‘와타나베 부인’(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 주부)들이 해외 투자에서 길을 찾았다.

주식도 해외 직구 열풍

박 씨처럼 해외 주식에 직접투자하는 주식 직구족은 올 들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외화 주식 직접투자 결제금액은 28억9626만 달러(약 3조1000억 원)였다. 분기 실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며 2012년 연간 투자 규모(28억6052만 달러)도 가뿐히 뛰어넘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해외 주식 직구 규모는 연간 최대치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산가 등 일부 투자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해외 주식 직구에 일반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중국 본토 주식을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한 ‘후강퉁’ 시행이 큰 몫을 했다.

주부 황모 씨(60)도 올 초 중국 본토 주식에 투자하면서 해외 주식 직구에 발을 들였다. 황 씨는 “중국은 시차가 없는 데다 한자를 써 기업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고 한국의 1980, 90년대 경제성장 경험을 토대로 투자처를 고를 수 있어 좋다”며 “증권, 자동차, 철도 관련 종목에 투자했더니 수익률 60%가 넘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후강퉁이 시행된 작년 11월 17일부터 올해 4월 16일까지 5개월간 국내 투자자들은 4조4418억 원 규모의 본토 주식을 거래했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최근 한 달 치를 더하면 6개월 만에 후강퉁 주식 거래는 5조 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경민 대우증권 PB클래스 이사는 “작년 말부터 중국, 홍콩 주식 비중을 늘린 고객이 많다”며 “최근 후강퉁 주식을 매도한 고객들도 다른 데 투자하지 않고 선강퉁에 대비해 홍콩달러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주식형펀드의 화려한 부활

올 들어 대표적 간접투자 상품인 주식형펀드에서도 해외 투자가 대세가 됐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19일까지 해외 주식형펀드에 1조6087억 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무려 7조3498억 원이 빠져나간 것과 딴판이다.

해외 주식형펀드는 중국펀드 열풍을 타고 2007년 말 순자산 65조 원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수익률이 고꾸라지면서 애물단지가 됐다. 2009년 7월부터 시작된 자금 순유출 행진이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올해 1월까지 67개월간 계속됐을 정도다.

하지만 2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과 중국 본토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가 뭉칫돈을 빨아들이며 해외 펀드의 부활을 이끈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에 힘입어 유럽 주요국 증시가 역사적 최고점을 갈아 치우자 유럽펀드로 올해 1조1000억 원 이상이 몰렸다. 중국펀드도 상하이 증시 급등세에 4월 말까지 3400억 원 이상이 유입됐다.

다만 이달 들어 중국 증시가 과열 논란 속에 큰 폭으로 조정받자 1374억 원이 빠져나갔다. 그 대신 중국펀드는 주식형 외에도 공모주펀드, 위안화로 투자하는 채권펀드 등 다양한 형태의 펀드가 등장해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달 첫선을 보인 공모주펀드 ‘흥국차이나플러스 채권혼합형’ 펀드는 출시 2주 만에 한도인 2000억 원이 차면서 판매가 중단됐다.

진성남 하이자산운용 이사는 “국내 증시가 4년간 답답한 박스권에 갇혀 있다 보니 코스피가 올해 상승해도 투자자들은 더 강하게 오를 거라고 믿지 않는다”며 “해외 펀드는 해외 증시 상승세와 맞물려 신상품이 쏟아지면서 다시 찾는 투자자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그래도 걸음마 수준

원화를 미국 달러로 바꿔 묻어두는 ‘달러 테크’족도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인 달러 투자 상품인 달러예금 잔액은 4월 말 현재 415억9000만 달러로 올 들어 56억 달러가량 늘었다. 2011년 말(245억 달러)과 비교하면 70% 급증한 규모다.

달러환매조건부채권(RP), 달러보험 같은 기존 상품은 물론이고 최근엔 주가연계증권(ELS)과 달러 투자를 접목한 달러ELS 등의 신상품이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공성율 국민은행 목동PB센터 팀장은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가치는 하락)할 때에 대비해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를 사두는 투자자도 있지만 원화 중심의 자산을 분산한다는 차원에서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로 눈 돌린 투자자가 늘고 있지만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가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 상황에 비해 해외 투자 비중이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 많다. 이경민 이사는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해 본 고객들은 달러 투자 상품을 포함해 해외 자산에 40%, 국내 자산에 60% 정도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정기예금을 선호하는 보수적 투자자들은 여전히 해외 투자를 꺼린다”고 전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해외 투자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에 불과한 반면 초저금리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70%를 넘어섰다. 영국, 프랑스는 100%를 웃돈다. 공모펀드 기준으로 지난해 말 일본은 펀드 자산의 32.7%(30조 엔)를 해외 자산에 투자하고 있지만 한국은 12.1%(22조9000억 원)에 그친다.

해외 투자의 주요 목적은 국내 시장의 위험을 분산하는 데 있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투자에서도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펀드만 봐도 전체 해외 주식형펀드 순자산 18조3619억 원 중 중국 펀드가 46%(8조4810억 원)를 차지할 정도다.

자산 절반 이상은 해외로

전문가들은 다양한 지역과 자산으로 투자금을 쪼개 투자하는 분산투자 전략을 지키면서 해외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은 “전 세계 자산시장의 2%도 채 안 되는 한국 시장에만 머물러 있다가는 투자 기회를 놓치거나 금융위기 같은 악재가 터졌을 때 손실을 막을 방법이 없다”며 “전 세계 자산에 골고루 투자해 수익률을 낮추고 위험을 낮추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최소한 자산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김승현 대신증권 글로벌마켓전략실장은 “국내와 해외 자산 배분은 5 대 5로 가야 한다”며 “앞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미국 경제의 독주 등에 따라 ‘슈퍼 달러’가 예상되는 만큼 해외 자산의 절반은 미국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신 실장은 “전체 자산의 60∼70% 정도는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특정 지역이나 상품을 고르기 힘들다면 운용사가 선진국, 신흥국의 주식 채권 원자재 등에 적절하게 분산해서 투자하는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중국 시장을 눈여겨보라는 전문가도 많다. 최철식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 부장은 “유럽은 계속해서 경기부양 정책을 내놓을 것 같고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해외 펀드보다 세금 부담이 낮은 해외 주식 랩상품에 투자하거나 연금저축 계좌를 활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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