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폭력과 침묵 강요… 여성은 아직 힘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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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리베카 솔닛 지음·김명남 옮김/240쪽·1만4000원·창비

화가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거미줄’ 연작 중 ‘무제’.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빨래를 너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에서 저자는 여성의 존재를 가리는 폭력을 읽는다. 창비 제공
화가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거미줄’ 연작 중 ‘무제’.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빨래를 너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에서 저자는 여성의 존재를 가리는 폭력을 읽는다. 창비 제공
“이 오빠가 설명해 줄게.”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는 2010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다.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신조어다. 이 단어의 연원이 된 글이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이다.

이 글을 비롯한 리베카 솔닛의 산문 9편이 이 책에 묶였다. 남과 여, 흑과 백, 남과 북(반구) 등 양분된 세계의 구조적 폭력을 비판하는 글 모음이다. 주목받은 ‘남자들은…’은 2008년 저자가 파티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남자는 최근 자신이 ‘아주 중요한 책’을 읽었다며 떠들기 시작한다. 장광설을 펼치는 남자를 보다 못한 친구가 그에게 “그 책을 쓴 사람이 이 친구”라며 저자를 가리킨다. 친구가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한 뒤에야 남자는 얘기를 멈췄고, 상황 파악을 하고는 얼굴빛이 달라졌다(알고 보니 심지어 그 남자는 책이 아니라 서평만 읽었을 뿐이었다).

솔닛은 남자들이 여자를 자꾸 가르치려 들고 여자는 침묵을 강요당해왔음을 짚는다. 중동 국가에선 여성의 증언이 법적 효력이 없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매일 약 3명의 여성이 배우자나 옛 배우자에게 살해당한다. 저자에 따르면 “내 경험상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쳐서 정면 대결을 일삼는 사람은 유독 한쪽 성에 많다”. 이 때문에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글이 온라인을 통해 퍼져 나가자 ‘남자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남자는 남자들도 가르치려 든다’ 등 반론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로 시작된 산문은 여성에 대한 강간과 살인이라는 심각한 범죄에 대한 분석으로 끝난다. 이 글은 여성이 생명권과 자유권, 문화와 정치에 관여할 권리를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려는 싸움이 지금도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으로 향한다. ‘가장 긴 전쟁’에선 성소수자들의 동성 결혼을 옹호하며, ‘호화로운 스위트룸에서 충돌한 두 세계’에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 빈곤에 시달리는 남반구에 가해지는 경제적 폭력을 질타한다.

한쪽의 입장에서 날카롭게 각을 세운 글이 때로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도 죽죽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저자의 섬세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있다. ‘거미 할머니’와 ‘울프의 어둠’에선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 등 화가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해, 그 존재를 없애려는 힘에 대해 성찰한다. 빨래에 휘감긴 여성을 그린 그림을 보면서 최근까지도 결혼과 동시에 여성의 성을 지우고 남편의 성을 쓰던 영어권 국가들의 관행을, 남성의 이름만 나열된 성서의 가계도를 떠올린다. “아버지들만이 아니라 할머니들을 호명하는 것, 침묵당하지 않고 노래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빨랫줄에 너는 현수막들이다.”(118쪽)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맨스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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