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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금세 들통 날 일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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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금세 들통 날 일을 왜?

동아닷컴입력 2015-04-26 16:27수정 2015-04-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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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너의 거짓말이 보여 01]
인류 진화와 함께해온 거짓말…교활한 생존 전략이자 몰락의 지름길
이완구 국무총리가 4월 20일 이른바 ‘성완종 스캔들’에 떠밀려 자리를 내놨다.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지 엿새 만이다. 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사의를 수용하면서 그는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 머무는 전직 총리 신세가 됐다. 재임기간은 63일. 헌정사상 최단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이 전 총리를 궁지로 몰고 간 게 거듭된 말 바꾸기라고 입을 모은다. ‘3000만 원 수수 의혹’은 오히려 부차적인 이슈였다는 것.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국민의 지탄을 받은 것도 르윈스키와의 부정행위 자체보다 거짓말 때문이었다”며 “이완구 전 총리가 의심을 피하려고 내놓은 해명들이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일부는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부메랑이 돼 그를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10분에 세 번씩

이 전 총리가 2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이미 국민에게 ‘거짓말에 능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줬던 게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당시 인사청문회장에서 이 전 총리는 오른손을 들고 “공직후보자인 본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할 것을 맹서합니다”라는 내용의 선서를 했다(인사청문회법 제7조). 그러나 공직후보자의 이런 약속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칼럼에서 이 전 총리는 당시 인사청문회를 통해 ‘거짓말이 드러나도 부인하거나 또 다른 거짓말로 덮을 수 있는 사람’임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에도 표현만 다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한 선서문을 두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공적인 자리에서 ‘사실’을 말할 것을 강조하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거짓말이 흔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바위 색에 가까운 회색 털을 가진양과 주변 사물과 비슷한 색깔로 변장해 앉아 있는 나방, 뱁새가 둥지를 비운 사이 뻐꾸기가 네 개의 알 중 하나를 밀쳐버리고 자신의 알을 낳아 놓은 모습(위부터).
거짓말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로버트 펠드먼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2년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자주 거짓말을 하는지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평범한 사람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10분에 약 3회씩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 방식은 이랬다. 피험자를 2명씩 짝지은 뒤 각각 10분 동안 상대방에게 자기소개를 하게 한 것. 참가자들에게는 사람이 낯선 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조사하는 연구라고 알렸다. 그리고 실험조를 3개로 편성해 1조 참가자에게는 ‘가급적 상대방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해달라’, 2조에게는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 많이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3조에게는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다. 대화 내용은 몰래 녹화했다.
참가자들은 실험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전말을 알았다. 이후 연구진과 함께 영상을 돌려 보며 자신이 한 ‘부정확한 말’(연구팀은 참가자의 심리적 저항을 줄이고자 ‘거짓말’ 대신 이 표현을 썼다)을 짚어냈다. 즉 참가자 스스로 공개한 거짓말 빈도가 이 정도다. 1, 2조 실험 참가자의 거짓말 빈도가 3조에 비해 높긴 했지만, 많은 참가자가 이유 없이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내용은 ‘옷이 예쁘다’는 가벼운 칭찬부터 ‘나는 록밴드 싱어’라는 것까지 다양했다. 펠드먼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저서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에 소개하며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거짓말을 듣는다. 그중 대부분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속임수라고 여기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사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상대방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긴 하다. 패션잡지 ‘코스모폴리탄’은 한국과 미국 여성 10명 중 7명이 성관계 후 상대방이 마음 상할까 봐 거짓말로 좋은 척한 적 있다는 설문 결과를 보도했다.
의학계에서는 환자가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믿어 증상이 호전되는 이른바 ‘플라시보 현상’이 널리 나타난다. 이 때문에 종종 의사들이 말기 암환자에게 상태를 속이는 ‘하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거짓말은 사회적 칭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국 저널리스트 이언 레슬리는 저서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에서 ‘두 골 차로 지고 있는 축구 경기에서 감독이 하프타임에 절망감을 감추고 역전할 수 있음을 선수들에게 확신시킨다면(최소한 그 팀이 이길 경우), 우리는 그것을 고무적인 리더십이라 부른다’고 했다. 나아가 우리가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할 것을 부추기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생일선물로 끈 달린 비누를 주신 할머니께 미소 지으며 감사한 표정을 짓도록 시킨다. 아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올해는 산타클로스가 안 올 거라는 협박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안타까운 건 아이들이 이런 ‘예의’뿐 아니라 일반적인 거짓말도 본능적으로 익힌다는 점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은 사고가 발달하고 말을 시작하는 3세쯤부터 거짓말을 한다는 내용의 연구가 다수 있다”며 “한 연구를 보면 2세 아동의 65%, 4세 아동의 94%가 거짓말을 한다”고 밝혔다. 거짓말을 하는 데는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가 그럴듯한 거짓말을 구사하는 것은 적절한 발달 단계에 도달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는 배경에는 ‘진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거짓말쟁이 이야기’의 저자 제레미 캠벨에 따르면 자연계에서 속임수는 많은 경우 ‘예외라기보다 오히려 규칙이다’. 그는 ‘거미는 먹이가 될 곤충들에게 거미줄의 위험을 경고할 의무가 없다. 여우도 살아남기 위해서나 배가 고플 때 죽은 체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승리가 중요한 목적일 때 속임수는 일종의 윤리이고 좀 더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사소한 거짓말’이라며 ‘하등의 생물학적 유기체들은 자신을 변형하고 꾸미면서 진화한다. 예를 들어 사이클로프테라라는 곤충은 색채, 모양, 크기뿐 아니라 심지어 엽맥과 균류가 끼어 생긴 얼룩까지 완벽하게 나뭇잎을 흉내 낸다’고 밝혔다.

속임수와 계략은 사회적 지능


줄기세포 연구 조작 스캔들을 다룬 영화 ‘제보자’의 한 장면.
인간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진화해왔고, 그래서 거짓말은 우리의 세포 안에 깊숙이 뿌리박힌 본성이라는 의견이 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도 거짓말 능력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된다. 특히 불편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이른바 ‘자기기만’은 거짓말의 일종이면서, 인간이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데 유용한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철학자와 늑대’의 저자 마크 롤랜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이라며 ‘인류의 과학적, 예술적 지능은 속임수와 계략의 피해자가 되기보다 가해자가 되고자 하는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고의 지능을 과시하는 진정으로 우월한 영장류가 되려면 하나가 아닌 여러 영장류를 대상으로 음모를 꾸며야 한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영장류는 적과 연합해 다른 영장류를 적으로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위기관리 컨설턴트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도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수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보다 거짓말로 모면하고 부인하는 편이 훨씬 얻는 게 많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인간의 뇌는 생존과 사회적 지위 상승, 그리고 성(性) 선택을 위해 거짓말, 핑계, 부인 등을 잘하도록 발달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니 마키아벨리가 저서 ‘군주론’에서 ‘언제나 선한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자들 속에서 파멸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의 국가를 지키고 싶다면 선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필요에 따라 그런 지식을 사용할 것인지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렇게 진화 발전해온 인류의 후손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정치인의 거짓말에 이토록 비난을 쏟아내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는 데는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설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는 경제학 분야에서 각광받는 ‘게임이론’으로 거짓말의 가치를 풀이하면서 “상대방이 모두 진실만을 말할 때 혼자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최대한 거짓말을 남발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를 절대우위전략(dominant strategy)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의 행동 여하에 관계없이 언제나 이길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은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합리화 기제를 갖고 있어서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관대한 경향이 있다. 자신의 거짓말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때로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조차 아예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면 자신만 일방적 피해자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매순간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판별하고, 대응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상자기사 참조).

하늘의 별과 내 안의 도덕률

그래서 사람들은 ‘도덕’이라는 것을 만들고, 진실만을 말하자는 사회적 약속을 한다. 또 내가 진실을 말하면 상대도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 실험에 따르면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사람은 보통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진실이고 눈으로 목격한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진실편향’이라고 한다.
‘속임수의 심리학’의 저자 파멜라 마이어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진실편향을 유지하는 건 이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진실편향이 없다면 인간의 문명은 살아남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회에서 상업 활동과 탐험, 발견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니 공인의 거짓말이 드러나면 충격과 분노에 빠지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저서 ‘실천이성비판’에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 위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이다’라고 썼다. 학자들은 이 문장에서 ‘반짝이는 별’을 지성으로, ‘마음속의 도덕률’을 도덕성으로 풀이한다. 우리 안에 있는 ‘거짓말의 유혹’을 통제할 수 있는 열쇳말이다.

송화선 기자 j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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