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충청대망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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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1997년 대선 승리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정권이 출범한 뒤 서울 삼청동 JP 총리 공관은 권부(權府)의 엄연한 한 축이었다. JP가 막판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DJ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다.

그 무렵 JP 총리 공관에서 성대한 만찬이 펼쳐졌다. 성완종 주도로 충청권 인사들이 구름같이 모였다고 한다. ‘실세 총리’가 된 JP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흥에 겨운 탓인지 분위기를 띄우는 발언들도 쏟아졌다고 한다.

만찬장에서 오간 떠들썩한 얘기는 즉각 청와대에 보고됐다. 청와대는 “JP가 충청권 세력화에 나선 것 아니냐”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JP를 정점으로 한 ‘충청대망론’을 주목했을 것이다. 총리 공관 만찬의 배후엔 성완종이 있었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보고를 받은 DJ가 추가 조사를 막아서 만찬 파문은 없던 일이 됐지만 ‘충청대망론’의 인화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성완종이 생전에 필자에게 소개한 일화다.

충청권 민심을 업어야만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은 정치권의 ‘공식’이었다. 1992년 대선부터 모두 5차례 대선 결과가 그대로 보여줬다. 2012년 대선에선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가 직접 자유선진당을 이은 선진통일당과 합당을 밀어붙이면서 충청권 판세를 뒤집었다는 평가다. 충청권의 한 여권 인사는 “새누리당 실무자들이 막판에 머뭇거리자 박근혜 후보가 강하게 합당을 압박했다”고 말했다.

고비마다 JP가 던진 선택은 충청 민심을 지렛대 삼아 승자를 만들어왔다. 정치권에선 JP가 내각제 개헌을 계속 요구한 것은 충청권에서 대통령을 배출하기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해석도 있다. 충청대망론은 캐스팅보트에서 한 발짝 더 나갔다. 충청권 출신 주자가 직접 대통령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다. 인구수도 충청권이 호남권을 앞지르면서 “‘영충호(영남-충청-호남)’ 시대가 열렸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충청대망론의 불씨를 지폈다.

충청권의 한 원로는 여당의 한 중진 의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당신이 큰 꿈을 꾼다면 무조건 충청권과 연을 맺어야 한다.” 이 말을 들은 이 중진은 서울 태생이지만 아버지가 충청권 출신이라는 인연의 끈으로 한 충청도 모임에 합류했다고 한다. 충청대망론의 외연이 커지고 있는 한 사례다.

성완종이 주도한 충청포럼에 등록된 충청 출신 각계 명망가는 3500명 정도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거물급들도 눈에 많이 띈다. 웬만한 사람들은 성완종이 충청포럼 운영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다 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충청포럼에서 교분을 넓혀 나갔다는 얘기가 많다. 충청포럼이 충청대망론의 전진기지로 비친 것도 ‘반기문 효과’ 때문이다.

성완종은 죽기 직전 한 언론과의 녹취록에서 자신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것은 반기문을 견제하려는 이완구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완구는 거듭 “나는 대권 생각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충청대망론은 이미 수면 위에 떠올랐다.

같은 지역 사람들이 잘 뭉치고 공감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에서도 대선 때마다 조지아 사단, 아칸소 사단, 시카고 사단 식으로 회자됐다. ‘지역감정’의 순기능마저 없앨 수는 없다.

문제는 정치공학으로만 덧칠됐을 경우다. 특정 지역과 지역이 손을 잡아서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공식에만 집착하는 것은 ‘패거리 정치’의 변형일 뿐이다. 시대의 고민, 대한민국의 미래 청사진이 담긴 시대정신을 내걸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지역을 떠나 유권자 의식은 더 성숙해갈 것이다. 충청대망론의 진화(進化)가 절실하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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