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기자의 野生&野性]흡혈박쥐 진짜 있다○… 동굴 속에서만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쥐에 관한 오해와 진실

일명 ‘황금박쥐’로 불리는 붉은박쥐. 동굴 훼손 등으로 서식지가 감소함에 따라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붉은박쥐는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지정됐다. 국내에 300∼400마리만 남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박쥐 전문가 정철운 박사는 “붉은박쥐는 동굴 안에서도 온도가 가장 높은 동굴 맨 안쪽에서 겨울잠을 잔다”고 말했다. 오른른쪽 작은 사진은 붉은박쥐가 동면하는 모습. 국립공원관리공단 정철운 박사 제공
일명 ‘황금박쥐’로 불리는 붉은박쥐. 동굴 훼손 등으로 서식지가 감소함에 따라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붉은박쥐는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지정됐다. 국내에 300∼400마리만 남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박쥐 전문가 정철운 박사는 “붉은박쥐는 동굴 안에서도 온도가 가장 높은 동굴 맨 안쪽에서 겨울잠을 잔다”고 말했다. 오른른쪽 작은 사진은 붉은박쥐가 동면하는 모습. 국립공원관리공단 정철운 박사 제공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동물, 박쥐. 요즘 여간해서는 박쥐를 보기가 힘들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저녁 어스름에는 시골뿐 아니라 지방 작은 도시에서도 떼로 나는 박쥐를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요새는 눈에 잘 안 띈다. 그래서인지 박쥐 얘기가 나오면 이것저것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거냐?’, ‘박쥐는 동굴에서만 사나?’, ‘정말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동물이냐?’ 지난달 치악산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종 1, 2급인 박쥐들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을 계기로 박쥐 취재를 한다고 하자, 나중에 좀 알려달라며 던져 놓고 가는 질문이 많았다.

특히 잦았던 질문. ‘다리 아프게 왜 그러고 자는 거냐?’ 국내에 몇 없다는 박쥐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박쥐가 왜 그러고 자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매달려 있어도 다리가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은 들을 수 있었다.

관박쥐가 날개로 몸을 감싼 채 자는 모습. 국립공원연구원 김혜리 연구원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박쥐 중 배트맨과 가장 흡사한 박쥐를 꼽는다면 관박쥐”라고 말했다.
관박쥐가 날개로 몸을 감싼 채 자는 모습. 국립공원연구원 김혜리 연구원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박쥐 중 배트맨과 가장 흡사한 박쥐를 꼽는다면 관박쥐”라고 말했다.
박쥐 다리, 무쇠 다리?

박쥐가 겨울잠을 자는 기간은 대개 11월에서 이듬해 3, 4월까지 대여섯 달. 좀 더 이른 10월에 동면에 들어 이듬해 4, 5월까지 7, 8개월을 꼼짝 않고 잠만 자는 박쥐도 있다. 이렇게 주야장천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도 다리가 안 아프다고? 그렇다고 모든 박쥐가 다 거꾸로 매달린 채 자는 건 아니다. 동굴 틈에 엎드리거나 모로 누워 자는 박쥐도 있다. 앉은 채 웅크려 자기도 한다.

아무리 오래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다리 아픈 줄 모르는 건 다리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근육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력으로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 고리처럼 생긴 발톱을 적당한 곳에 걸고 그냥 축 늘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몇 달씩 매달려 있어도 힘들 일이 없다. 거꾸로 매달린 채 죽어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박쥐 다리엔 힘줄만 있다. 박쥐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다 다리 근육이 없어졌을까?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거꾸로 매달려 자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저런 추측만 있을 뿐이다. 이걸 알아내면 큰 상을 하나 받을지도 모른다.

흡혈박쥐, 우리나라에 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흡혈귀를 보면 생김새가 박쥐와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다. 생긴 건 딴판이라도 박쥐처럼 밤에만 돌아다니는 야행성인 경우가 많다. 흡혈귀의 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박쥐가 실제 피를 빨아 먹고 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우 송강호가 뱀파이어 신부(神父)로 나오는 영화 제목도 ‘박쥐’ 아닌가.

흡혈박쥐. 있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전 세계 1000종이 넘는 박쥐 중 피를 빨아 먹고 사는 박쥐는 딱 3종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중남미에 산다. 주로 소, 돼지 같은 동물 피를 빨아 먹는다. 하지만 흡혈박쥐에게 물려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는 뉴스가 몇 번 나오기도 했다.

흡혈박쥐는 코 신경세포 물질이 열감지기 역할을 해 흡혈 대상의 정맥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혈박쥐의 침 속에는 한번 빨아 올린 피가 한동안 굳지 않게 하는 항응고제 성분이 들어 있다.

그럼 피를 빨아 먹지 않는 박쥐들은 무엇으로 배를 채울까. 우리나라에 사는 박쥐는 전부 식충박쥐다. 모기, 나방 같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많을 때는 하룻밤에 모기를 무려 2000∼3000마리 삼킨다고 한다.

과일이나 꽃의 꿀을 먹고 사는 박쥐도 있다. 주로 열대지방에 서식한다.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전시 중인 박쥐(이집트 과일박쥐)가 이런 박쥐다. 쥐나 개구리, 물고기를 잡아먹는 육식성도 있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 주로 많다.

시력 제로?

박쥐는 사람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초음파로 거리를 가늠하고 방향 탐색을 한다. 코나 입에서 내보낸 초음파가 뭔가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감지해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박쥐 얼굴을 보면 대개 눈, 코, 입에 비해 귀가 도드라지게 크다. 되돌아오는 초음파를 담기 수월하게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귓속 가장자리에는 이주(耳柱·귓기둥)라는 게 있다. 초음파를 붙잡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박쥐 눈을 가려도 20∼30cm 간격의 그물망을 쉽게 통과하는 건 이렇게 초음파를 활용하는 재주 때문이다.

초음파는 의사소통 수단으로도 쓰인다. 해질 무렵 어미 박쥐가 먹이를 구하러 동굴 밖으로 나간 사이, 한 연구자가 새끼 박쥐를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놨다. 다음 날 새벽, 동굴로 되돌아온 어미는 새끼를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새끼가 있는 곳으로 단번에 날아갔다. 동굴로 들어서면서 주고받은 초음파로 새끼 위치를 바로 알아낸 것.

시력은 어떨까? 비행이나 먹이 사냥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 처리를 초음파에 의존하는 걸로 봐서 시력은 완전히 퇴화했을까? 시력이 상당히 나쁜 건 맞다. 하지만 앞을 전혀 못 보는 건 아니다. 눈을 가렸을 때보다 가리지 않았을 때 촘촘한 그물을 더 잘 빠져나갔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황금박쥐와 배트맨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TV 만화영화 ‘황금박쥐’가 엄청난 인기였다. ‘어∼디에서 오∼느냐 황금바악∼쥐’ 하는 주제가를 당시 초등학생들은 입에 달고 살았다. 만화영화 영향 때문인지 국내에 서식하는 30종 안팎의 박쥐 중 가장 이름난 박쥐가 황금박쥐다. 우수리박쥐, 큰발윗수염박쥐, 안주애기박쥐, 서선졸망박쥐 같은 건 이름도 낯선 데다 이런 박쥐가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황금박쥐, 진짜 황금색일까? 황금박쥐는 사람들이 그냥 갖다 붙인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붉은박쥐. 그래서 황금박쥐 앞에는 대개 ‘일명(一名·본명은 아니고 일부에서 따로 부르는 이름)’이란 표현이 따라다닌다. 그렇다고 황금박쥐는 붉은색도 아니다. 실제로 보면 짙은 오렌지색에 가깝다.

만화영화 얘기까지 나온 김에 역시 영화 속 주인공인 ‘배트맨’ 얘기도 조금 해보면, 겉모습상 배트맨에 가장 근접한 박쥐는 ‘관박쥐’다. 짙은 회색의 양 날개로 몸을 감싸고 있는 관박쥐를 보면 망토로 몸을 가린 배트맨 분위기가 좀 난다. 양 날개로 몸을 덮고 자는 모습이 마치 관 속에 누운 것 같다고 해서 관박쥐란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돌아다니지만, 관박쥐의 ‘성(姓)’은 시체 담는 그 관(棺)이 아니라 머리에 쓰는 관(冠)이다. 거꾸로 매달린 관박쥐는 어떻게 보면 왕관 모양처럼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왼쪽 위부터 관코박쥐, 큰귀박쥐, 왼쪽 아래부터 토끼박쥐, 큰발윗수염박쥐. 관코박쥐는 코가 관 모양의 대롱처럼 생겼다. 큰귀박쥐는 귀가 커 붙은 이름인데 바로 옆 토끼박쥐의 귀에는 못 미친다. 큰발윗수염박쥐는 뒷발이 크다. 관코박쥐와토끼박쥐의 귀 아랫부분에 기둥처럼 솟아 있는 건 이주(귓기둥). 초음파를 모으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정철운 박사 제공
왼쪽 위부터 관코박쥐, 큰귀박쥐, 왼쪽 아래부터 토끼박쥐, 큰발윗수염박쥐. 관코박쥐는 코가 관 모양의 대롱처럼 생겼다. 큰귀박쥐는 귀가 커 붙은 이름인데 바로 옆 토끼박쥐의 귀에는 못 미친다. 큰발윗수염박쥐는 뒷발이 크다. 관코박쥐와토끼박쥐의 귀 아랫부분에 기둥처럼 솟아 있는 건 이주(귓기둥). 초음파를 모으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정철운 박사 제공
동굴에서만 사나?

박쥐는 주로 동굴이나 폐광을 보금자리로 삼는다. 하지만 모든 박쥐가 동굴에서 사는 건 아니다. 바위틈, 고목(古木) 속, 처마 밑에서도 산다. 도봉산 선인봉 박쥐길도 이곳 바위틈에 박쥐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프리카에는 나뭇잎을 돌돌 말아 그 속에 들어가 지내는 박쥐도 있다.

박쥐가 동굴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철 내내 온도와 습도가 크게 변하지 않는 동굴은 한겨울에도 영상 10도 이상을 유지한다. 다른 젖먹이동물들에 비해 동면 기간이 특히 긴 박쥐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겨울잠에서 깬 활동기에도 낮에는 동굴에서 자고 밤에 먹이활동을 나가는 박쥐에게는 천적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이기도 하다. 박쥐는 서로 다른 종끼리도 같은 동굴 안에서 안 싸우고 잘 산다. 토끼박쥐는 주로 동굴 입구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붉은박쥐는 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매달려 잔다. 관박쥐는 입구, 중간, 끝,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박쥐를 보기 힘들어진 건 서식지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자연동굴은 관광자원으로 개발되는 곳이 많아지면서 잠 많은 박쥐가 편히 쉬기가 힘들어졌다. 폐광은 입구를 막거나 중금속 유출을 막는다고 광산 자체를 메우는 경우가 많다. 서식지 감소로 붉은박쥐(1급)와 토끼박쥐, 작은관코박쥐(이상 2급)는 멸종위기종 신세가 됐다.

편복지역(LM之役)

조선시대 학자 홍만종(1643∼1725)이 쓴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봉황의 잔치에는 길짐승이란 핑계로, 기린의 잔치 때는 날짐승이란 이유로 가지 않았다가 모든 짐승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래서 결국 낮에는 밖으로 나다닐 수도 없게 됐다는…. 박쥐 얘기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서 잇속만 챙기는 행동’을 풍자한 것. 편복지역(박쥐구실)도 그런 말이다. 편복은 박쥐를 뜻한다.

이런 얘기도 있다. 어머니가 산에서 밤을 따 와 세 아들에게 나눠 줬다가 나중에 하나씩만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큰아들은 제일 작은 밤을, 둘째는 썩은 밤, 막내는 제일 큰 밤으로 골라 내줬다는 것. 큰아들은 죽은 뒤 도둑질로 먹고사는 집쥐로, 둘째는 거꾸로 매달려 사는 박쥐로, 막내는 귀여움받는 다람쥐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박영수)에 소개된 내용이다. 맥락상 박쥐가 셋 중 제일 하급이란 얘기다.

이런 식으로 박쥐는 늘 악물(惡物)로 여겨졌을까?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1745∼1806?)의 그림 ‘군선도병풍’에는 박쥐가 장수의 상징이자 신선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조선 후기 박쥐상징 회화와 공예품의 분석’(엄소연)이란 논문에 따르면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박쥐상징 공예품은 324건이나 된다. 악물로 여겼다면 장신구와 옷, 자개경대 손잡이 등에 박쥐를 새겨 넣었을 리 없다.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새 편에 붙었다, 쥐 편에 붙었다, 박쥐의 두 마음? 박쥐는 억울하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박쥐#배트맨#황금박쥐#흡혈박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