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그림, 어떤 주석으로도 설명할 수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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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전 2권 세트)/강신주 지음/각 236, 200쪽·5만 원·민음사
◇마크 로스코/아니 코엔 솔랄 지음/여인혜 옮김/304쪽·2만 원·다빈치

스튜디오에서 작품 앞에 선 마크 로스코(촬영연도 미상·왼쪽)와 그가 자살 직전 완성한 아크릴화 ‘무제’(1970년). 죽음을 택하기 직전까지 로스코는 별거 중인 아내와 화해를 시도하며 자신의 삶을 집어삼킨 어둠에서 헤어 나오려 애썼다. 코바나컨텐츠 제공
스튜디오에서 작품 앞에 선 마크 로스코(촬영연도 미상·왼쪽)와 그가 자살 직전 완성한 아크릴화 ‘무제’(1970년). 죽음을 택하기 직전까지 로스코는 별거 중인 아내와 화해를 시도하며 자신의 삶을 집어삼킨 어둠에서 헤어 나오려 애썼다. 코바나컨텐츠 제공
누구에게 들었더라. ‘부족함 없이 지낼 작업 환경을 제공해 단기간에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생산하도록 만든다. 술이나 마약에 몰입하기 쉽게 한다. 그러다 죽으면? 금상첨화.’ 서구 미술계가 스타 작가를 내놓는 방법이라고 했다.

극단적 도식일 뿐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미술계’라 불리는 영역의 생태는 희한하다. 작가는 가급적 공고하게 구축한 세속적 생활 토대 위에서 그 속됨을 보상하듯 작품의 순수성을 주창하고 싶어 한다. 갤러리와 미술관은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 필수불가결한 물리적 과정으로 개입해 양쪽 모두의 행동을 제어하는 지도력을 행사하려 한다. 예술을 막연히 동경하는 평범한 현대 관람객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걸으며 의도된 차례대로 작품을 만나 습득하는 천편일률의 행위다.

6월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러시아 출신 미국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캔버스 작품 300여 점 중 50점을 선별했다. 주최 측은 “가격이 높은 작품만 골랐다. 전시품 보험 평가액만 2조 원이 넘는다”고 강조했다.

작품 이미지와 평전 텍스트를 2권으로 나눠 묶은 ‘마크 로스코’는 이 전시의 도록이다. 인기 강연자인 철학자 강신주 씨가 글을 썼다. 프랑스 문화역사가가 2013년에 펴낸 로스코 평전도 우연인 듯 같은 시기에 출간됐다.

인물에 대해서든, 작품 전시에 대해서든, 전시와 때를 같이해 나온 책에 대해서든 로스코와 관련된 글을 쓰는 건 두려운 일이다. 로스코와 그의 친구인 화가 아돌프 고틀리브는 1943년 6월 7일 뉴욕타임스 미술부문 편집자 에드워드 앨던 주웰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예술가에게, 비평가들의 작업이란 건 생애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전시 도록에 들어간 주석은 단순명료한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만 보탬이 됩니다. 어떤 주석으로도 그림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그림과 관객이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치르듯’ 만나는 경험에서 나와야 합니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그 두 마음의 결혼과 같습니다. 그리고 결혼과 마찬가지로, 동침의 결여는 예술에서도 절연의 까닭이 됩니다.”

로스코는 1970년 2월 뉴욕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을 앞두고 두어 달 동안 매달린 작품은 가로 150cm, 세로 145cm의 캔버스를 주홍빛으로 가득 채운 아크릴화였다. 그가 자살하기 전 작업실에서 이 그림을 본 한 미술역사가는 로스코가 소속된 갤러리를 찾아가 “누군가 그를 붙잡아줘야 한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책 속 텍스트는 풍성하고 편집은 멋스럽다. 거실 책꽂이의 품격을 높여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로스코가 자신의 작품 전시에 대한 이런 책을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텍스트로만 구성한 평전 쪽이 한결 더 차분한 전시 길벗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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